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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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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8] / 삽화 윤광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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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0일(목) 10:31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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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닥터 홀이 버버그 여사의 유산을 결핵요양원 건립 후원금으로 받게 되었대요!”
이 소식은 밀물처럼 퍼져 나갔다. 자금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요양원을 지을 대지를 구입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셔우드는 부동산 매매에 일가견이 있는 조선인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팔려는 땅이 나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직접 셔우드 부부를 데리고 가서 보여주기도 했다.
마침내 이상적인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은 셔우드의 집 뒤에 있는 반대편 경사진 곳이었다. 요양원 자리는 입지적으로 공기가 좋고, 해가 잘 들며, 방풍이 잘 되는 곳이 좋다. 갑자기 응급환자가 있을 수 있기에 병원과도 그리 멀지 않아야 했다.
그 곳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방풍이 잘 되었고 남향이라 따뜻한 햇볕을 쪼일 수 있었다. 앞쪽에는 황해의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땅을 살 때 조선 사람의 명의로 구입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주위에서 지인들이 좋은 권고를 해 주었다. 신실한 조선인 친구들에게 땅 구입하는 것을 맡기고 셔우드는 잠시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마침 장마철인 우기라 병원이 한산하였고 학교도 방학이라 휴양처가 있는 원산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원산에 도착해서 별장을 손질하고 집 안팎을 청소하는 동안 맥컬리 댁에 머물렀다. 집에 얹어 구입한 보트에 페인트를 칠하고 ‘Chamie’ 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선말로 ‘재미’라는 뜻인데 이 보트는 친구들에게 많은 재미를 안겨주었다.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도 원산해변으로 휴가를 와서 이 보트를 이용하곤 했다. 친구들은 셔우드가 휴양처를 원산으로 정한 것을 무척 기뻐했다.
별장지하실에 임시진료실을 만들어 놓고 마을 주민들에게 휴가를 온 의사들이 교대로 진료를 해 주었다. 진료를 하며 조선인 중 상당수가 결핵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핵에 감염된 조선인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 주지 않으면 후에는 가족은 물론 선교사 가족들도 감염될 것이기에 조선인 환자들의 치료가 시급했다.
돛단배를 타고 강풍에 휘말리기도 하며 원산에서 즐거운 추억과 휴식을 선물 받고 은혜로운 집회를 마지막으로 휴가가 끝났다.
해주로 돌아오자 병원에는 소위 ‘여름병’으로 불리는 병에 시달리는 어린이 환자들이 많았다. 채 익지 않은 과일을 먹어서 배탈이 난 경우였다. 장티브스와 이질도 발생해 병원 일손이 바빠졌다. 해주구세병원은 ‘이질을 잘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소문이 나서 일본인들도 공립병원에 다니다가 이 병원으로 옮겨왔다. 셔우드가 런던의 ‘열대약학학교’에서 배웠던 치료법이 조선인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병을 치료하다가 한 가지 이상한 수수께끼를 발견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했지만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 비해 회복이 대단히 늦었다. 연구시설이 없어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고추가루를 넣은 ‘김치’가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매운 성분은 아메바 균이 내장에서 서식하기도 전에 매운맛이 물리적인 작용을 하여 균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실제로 권유를 받아들여 김치를 먹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매우 좋은 효과를 보였다.
병원에는 신경정신병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기에 안타까웠다. 처음 이런 환자를 받을 때는 비교적 치료될 가망성이 있는 환자들만 받았다. 나중에는 치료하기 힘든 환자들도 받기로 했다. 결국 기독교 선교사 본연의 봉사정신과 열정으로 모든 환자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발전했다.
어떤 환자는 놀랄 정도로 빨리 완치되어 의료진을 기쁘게 했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낫도록 최선을 다했고 쇠로 살을 지지는 따위의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무당치료법’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셔우드는 병원 의료진들에게 환자의 마음에 편안함을 주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늘 묵상했다.
병원이 ‘죽는 장소’가 아니라 ‘병을 낫게 하는 곳’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경정신과 환자들의 입원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수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더 받지 못하고 돌려보낼 때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프고 착찹했다. 그들의 절망과 고통을 알고 있기에 셔우드는 안타까움으로 몸을 떨곤 했다.
“결핵 요양원 건립 허가를 내 줄 수 없습니다. 우리 도시에 결핵 환자들을 우글거리게 할 수는 없지 않소.”
요양원을 지을 대지구입 허가를 받으러 시장실을 방문했다. 조선 친구들은 땅 주인과 좋은 가격으로 흥정을 끝낸 후였다. 그런데 이런 장애에 부딪히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시장은 계속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당신이 매입하려고 하는 대지는 이미 우리가 공원 조성을 하려고 계획한 정부 소유의 소나무 숲 옆이오. 그 곳을 결핵 환자들이 어슬렁거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님, 해주에는 결핵 환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상당히 많은 병균을 퍼뜨리고 있어 위험합니다. 요양소를 지어 환자를 격리시키면 일반인들에게 전염될 걱정은 없어 오히려 해주 시민의 건강이 안전합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병균이란 거 지어낸 말이 아니오? 도대체 병균을 본 사람이 있단 말이오?
병균을 현미경으로 보여주겠다고 해도 그들은 당치 않는 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계속 “안된다!”는 말뿐이었다. 셔우드는 또 한 번 심한 좌절감에 휩싸였으나 결핵 환자들을 살릴 요양원를 지어야 한다는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당시 결핵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20명에 한 명 정도라면 조선은 5명 중 한 명이 결핵 환자였고 활동력이 강했던 병균이었다. 비위생적으로 일하는 도시의 근로자들은 가장 좋은 감염원이었다. 서민들의 주택은 초가집으로 불결하였고 창문이 없이 굴속같이 막힌 구조여서 햇볕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결핵환자들 중에는 치료도 받지 않고 불치병으로 생각하고 비관해 스스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요양원 건립은 치료뿐만 아니라 계몽과 교육이라는 목적에서도 절실히 필요했다.
결핵 요양소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울 듯하여 ‘결핵환자 위생학교’라는 이름을 붙일 계획이었다. 이 ‘결핵환자 위생학교’는 환자의 치료는 물론 전염병 예방을 포함한 일반적인 의료상식을 가르칠 예정이었다. 환자들이 완치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배운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니 병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은 당연했다.
선교위원회 허락을 받았고, 버버리 여사의 유언에 따라 요양원 건립자금도 확보되었는데 소년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셔우드는 좌절했고 밤이면잠이 오지 않았다.
신앙심이 강한 조선인 신자들은 그런 셔우드를 위해 기도하며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 주었다. 셔우드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보잘것없는 자신의 인간적인 힘만 믿고 일을 성취시키려 했던 자만심을 깨닫게 해 주었다.
회심 기도 중 어느 날, 불현듯 해주에 와서 만났던 도 경찰국장 사사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일본인 친구들의 힘을 빌리는 일은 달갑지가 않아 한 번도 부탁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 사사키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셔우드는 면회를 신청했다. 사사키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방문을 해 주신 용건이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전염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요양원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경위와 진퇴양난인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셔우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다른 대지를 찾아보시지요. 적당한 곳을 찾은 다음 허가를 신청해 보십시오. 그러면 별일 없이 순조로울 겁니다.”
사사키는 조언만 해 주었을 뿐 약속을 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신중한 태도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 돌아가는 방법을 사사키에게 배운 셈이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 대지는 처음에 구입하려 했던 곳에서 수백 미터 거리에 있었다. 남향에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며 아래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요양원 대지로는 좋은 위치였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아 왕래하기도 불편하지 않았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 도시의 매연을 피할 수 있었다. 땅 주인도 팔고 싶어했다. 이번에는 시장과 시의원들이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대지구입을 허가해 주는 것을 보고 사사키가 도와주었음을 짐작하고 감사했다.
‘아, 드디어 조선에 결핵요양원을 지을 수 있게 되었구나!’
1928년 3월이었다. 굽이굽이 험한 산길을 가듯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셔우드는 울컥하였다. 남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어릴 때부터 꿈꾸어 왔던 일들이 놀랍게도 현실로 다가옴을 느끼며 셔우드는 진심으로 두 손 모아 감사기도를 드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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