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5-01 오후 12:28:01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교육일반문화.스포츠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26-05-01 오후 12:28:01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이진수의 이 한장의 사진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화진포의 성 [39]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39] / 삽화 윤광자 화가

2022년 01월 13일(목) 16:0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해주구세병원(노튼 기념병원)의 소문은 좋게 퍼졌다.
외국인 방문객들과 후원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사촌인 에밀리 해스킨(Emily Haskims)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설교를 통해 병원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고 병원 일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후일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의 제약회사 파크 데이비스(Park Ddvis, 현재의 화이자)같은 제약회사 판매원들도 찾아 왔는데 그들은 세일즈를 넘어 좋은 후원자가 되었다.
“여보, 울버턴 여사가 우리를 후원해 주기로 한 3년이 다 되어가네요.”
전에 선교위원회 사무장 디펜스 박사가 병원을 방문했을 미국에 돌아가 울버턴 여사에게 선교후원을 연장해 줄 것을 부탁드렸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고심하던 매리언은 유려한 필체로 현재의 병원 사정을 알린 후, 선교후원을 3년만 더 연장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런 시기에 운산에 있는 ‘동양연합광업회사’에서 우리를 그곳 병원 담당의사로 와 달라는 서신을 보내 왔다.
“우리 광산 담당의사인 닥터 파워(E. L. Power)가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으로 가게 되어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닥터 홀 부부를 우리 병원 담당의사로 모시고 싶습니다.”
광산에서는 보수를 지금보다 두 배의 좋은 조건을 제시했고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선교에 필요한 의약품과 다른 물품을 무료로 제공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셔우드는 고심했다. 이 요청을 수락하면 안정된 환경에서 오래 일할 수 있겠지만 결핵요양원 건립의 꿈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어서 요양원을 지어 저 불쌍한 결핵환자들을 격리 수용해서 치료해야하는데 그 길이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낭보가 날아왔다. 뉴욕의 울버턴 여사의 편지가 온 것이다. 앞으로 5년을 더 후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자신의 나이가 76살이라 그 후는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했다. 셔우드 부부는 감동하며 서로 얼싸 안았다. 결핵요양원 건립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알고 울버턴 여사에게 진정이 담긴 감사의 편지를 썼다.

요양원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아 초조하게 기다리던 1월의 어느 날이었다. 감리교 본부 웰치 감독한테서 전보가 왔다. 2~3개월만 운산에 있는 미국금광으로 가서 환자를 진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닥터 파워가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광산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셔우드 홀 내외를 해주구세병원으로 돌아오게 해 주고 병원의 재정 손실도 없도록 배려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엄동설한에 아기 월리엄을 데리고 북쪽 추운지방으로 가는 일이 주저되기도 했지만 병원 일을 닥터 김에게 잠시 맡기고 금광회사에 가서 환자들을 진료하기로 했다.

셔우드는 지금까지 동양에 진출한 구미기업들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질 못했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서로 경쟁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례를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선입관은 운산에 도착하여 말끔히 해소되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모두 셔우드 내외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운산은 만주 국경에서 약100킬로미터에 있는 조선의 최북단 지역으로 겨울엔 영하 24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지방이었다. 운산의 ‘동양연합광업회사’에 서양 직원들이 40여 명있었고 복지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셔우드는 소년시절에 어머니와 운산광업소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종업원들이 혼자 와 있었는데 여러 해가 지나자 광산이 발전되었고 광산회사에서는 유능한 기술자들이 필요했다. 이 벽촌에 그들을 데려오려면 병원시설을 만들어 가족을 데려올 수 있게 해야 했다. 학교교육은 저학년 어린이들은 현지에서 미국인 선생에게 배우고 고학년이 되면 평양 외국인학교로 보내 교육을 시켰다. 회사에서는 매년 1만 5천 달러를 병원비로 사용하였고 모든 진료는 무료였다.
근무시설이 좋고 보수도 많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므로 선교할 기회가 많은 이 회사의 청빙제안을 거절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주 결핵요양원 건립을 생각하면 복지시설이 좋다고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병원의 시설은 훌륭했다. 온갖 종류의 좋은 수술기구들이 진열장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고 값비싼 미국산 의약품과 의료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매리언은 수술실의 밝은 램프를 보고 몹시 부러워했다. 셔우드는 일본산 의약품만 보다가 효능 좋은 미국산 의약품을 보며 해주병원에도 이런 약을 쓰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진료실과 의료품을 보여주던 지배인은 두 의사 부부가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기쁜 표정을 짓더니 해주로 돌아갈 때 수술용 램프와 주사바늘을 선물하겠다고 하였다.
미국에 가서 치료받고 있는 닥터 파워는 시골실정에 맞게 인정미를 가진 현대판 의사였다. 광산 사람들이 왜 그를 좋아했는지 곧 알게 되었다. 그는 미국사람이든 조선 사람이든 차별하지 않고 친절했고 성심껏 진료했다. 환자들을 사랑했고 그들도 닥터 파워를 사랑했다.
이 유능한 의사가 병이 나서 진료를 계속 할 수 없게 되자 의사를 구하려 해도 이곳에서는 좋은 미국인 의사를 구할 수 없었다. 닥터 파워가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을 동안 셔우드 부부가 임시로라도 그의 자리를 대신해 주게 되어 마을 사람들이 이들 부부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던 것이다.
닥터 파워는 매리언에게 흥미 있는 병증을 하나 발견했으므로 후에 자기가 조선에 돌아오면 그 환자를 수술할 때 보조해 달라고 말했다. 메리언은 닥터 파워가 속히 건강을 회복해서 돌아오길 기다렸다. 경험 많은 외과의사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환자들과 가까워지려는 데 어느새 광산병원에서의 2개월이 지났다. 닥터 파워는 회복되어 약속대로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러 유익한 경험과 물질적 혜택을 준 광산회사에 감사드리며 셔우드 부부는 해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추운지방에서도 아들 월리암이 별 탈 없이 잘 지내준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 혼자로는 치료하기 힘든 환자들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해주에 돌아오니 닥터 김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전보다 준비가 더 잘 된 상태에서 병원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아, 여보 매리언! 드디어 요양원 건축허가가 나왔어요!”
1928년 3월, 셔우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매리언을 불렀다. 운산에서 해주로 돌아온 지 며칠 후였다. 셔우드는 춤추듯 기뻐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허가서에는 어린 시절 평양에서 친구였던 도지사 루터 박(Luther Park)의 서명이 있었다.
또 다른 기쁜 일이 있었다. 이종사촌 에밀리 해스킨스가 약속대로 병원에 도움을 주려고 다시 가족들과 함께 해주에 왔다. 마침 기공식을 하려고 할 때에 그들의 가족인 로버트 월리엄스 목사가 기공식 예배를 드려주고 함께 첫 삽을 떴다.
결핵요양원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결핵환자 위생학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아들 셔우드, 그동안 참 수고 많았네!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야 그 꿈을 이루게 되었네!”
어머니 로제타 홀이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정초식(건축 기초공사 후 모퉁이에 머릿돌을 설치해 공사착수를 기념하는 서양식 의식)을 해 주었다. 셔우드는 어머니가 참석해서 정말 기뻤다. 어린 시절부터 꿈 꿔왔던 셔우드의 꿈을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잘 알기 때문이다. 기공식을 마치고 어머니는 여자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갔다.

셔우드는 요양원 건축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으로 원하는 건물을 지어 줄 건축업자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기도하던 중에 우연히 중국인 업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죽은 아내를 기념하는 뜻에서 이익을 남기지 않고 건축해 주겠다고 했다. 계약서 첫 구절에 주일에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 업자 또한 주님이 예비하신 분이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은 모두 열심이었다. 셔우드는 만주 방식의 침실을 병동에다 설치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소년시절(1910년) 어머니를 따라 만주횡단여행을 할 때 본 것으로 방의 한 부분을 침대모양으로 높게 만드는 것이다.
높이 쌓은 침대 돌 밑으로 부엌 아궁이를 만들어 불기와 연기가 침대를 데워주고 굴뚝으로 나가게 하는 방법이다. 침대 밑에는 여닫는 문이 있어서 더운 날은 그 문을 닫으면 불기와 연기가 바로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취사용 화력으로 방바닥과 침대를 따뜻하게 하는 이 방법은 난방과 통기의 효과가 있다. 침대가 있어 간호사들도 허리를 굽히지 않아 허리가 덜 아플 것이다. 콘크리트에 조선의 매끈한 기름종이로 바르면 따뜻하고 바닥에 틈이 없어 벌레도 접근하지 못해 위생적이다.
의료진들에게는 편리하고 환자들에게 위생적인 시설을 만들어주려고 주야로 골몰하던 어느 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홀, 성난 군중들이 공사장으로 몰려온다고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강원선관위 공정선거지원단 집합교..

“물 걱정 덜고 안전은 높이고”..

고성소방서 산림화재 취약지역 점..

농어촌공사 ‘1인1청렴나무 가꾸..

제과·차체수리 분야 금메달 수상..

최신뉴스

‘무태어’로 표기되다 ‘명태..  

노후 공공시설물 철거 후 주..  

생활밀착형 정책 발굴 나선다..  

2026년 풍수해·지진재해보..  

여름철 자연재난 사전 대비 ..  

행정 전화 폭언 방지 시스템..  

탑동2리 ‘선유리’, 인흥3..  

상반기 폐기물 소각시설 정기..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