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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46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6] / 삽화 윤광자 화가

2022년 05월 19일(목) 11:13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셔우드 부부는 다시 안식년을 맞았다. 미국에서 친지들과의 재회, 전문적인 의료기술 연찬, 후원자들과의 만남, 강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에서 의약품이 모자란다고 약품을 구입하여 속히 귀국하길 바란다는 전보가 왔다. 중일 전쟁으로 약품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급히 필요한 의약품을 구해서 1939년 3월,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에 도착해보니 다른 세상이 되었다. 달력도 일본 달력으로 바뀌어 있었고 일본의 첫 왕인 메이지로 시작하는 연호를 써서 서기 1939년을 2599년으로 표시했다. 조선 사람들이 서양 달력을 사용하면 일본 왕에게 충성하지 않는 비애국자로 간주해 경고를 받았다. 서양 사람들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행동은 제약했다. 외국인들은 택시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전쟁의 바람은 서서히 해주까지 불어왔다. 일본 육군들이 단파 무선라디오를 빼앗아가서 국제 뉴스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장파 방송은 “극동에 새 질서를 정립하려는 일본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는 식의 ‘일본의 승리’를 강조하는 선전만 나왔다. 전쟁이 진행되자 나이 든 사람은 물론 나이 어린 학생까지 전쟁터에 징집되어 갔다.
셔우드는 남학교 교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전사자가 한 줌의 재로 돌아올 때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역에 나가 마중을 해야 하는 고역을 치루어야 했다. 날이 갈수록 흰 상자의 수는 많아졌고 이 슬픈 마중도 더욱 빈번해졌다. 신병들이 전선으로 떠날 때도 학생들이 역에서 모여 그들을 전송해야 했다.
해주구세병원의 의사들도 부상병 치료 요원으로 차출되었다. 해주 같은 작은 도시까지 부상병들이 속속 들어오는 것 보고 셔우드는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들은 ‘빛나는 전투의 승리’는 사실과 다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편물은 샅샅이 검열되었고 편지는 모두 압수되었다. 친지나 친구들과의 소식도 단절되었고 앞으로 닥쳐올 일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자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어느 날 밤, 셔우드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창문을 커텐으로 가리고 불을 끈 다음 라디오에 청진기를 대고 다이얼을 조심조심 돌렸다. 귀에 익은 아나운서 ‘캐럴 알곳’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청진기로 상해방송을 청취하였다. 그 방송의 뉴우스들은 일본방송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비로소 외부 사태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늘 조심해야 했다. 성공회 선교사 채드웰 신부는 단파방송을 들었다는 죄목으로 10개월 감옥 형을 언도 받았다.

선교사들은 신경전에 시달리다가 하나, 둘 조선을 떠났다. 그래도 셔우드 부부는 조선에 남아 있자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고국의 친지들에게도 편지에 전쟁에 대한 언급을 삼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별 내용도 아닌데 편지 검열이 심했고 중간을 삭제한 편지도 읽어야 했다.
1940년 여름,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일본 육군이 요양원을 접수한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양원 직원들이 일본 육군 징발 대상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가장 두려운 소문은 시베리아에 망명 중인 조선인들이 공산군으로 무장하여 해주를 점령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것이었다. 해주시는 중요한 전략적인 항구로 변해 있었다. 의사 중에서 조선 독립군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도 한다.
각 학교에서는 영어 과목이 없어졌고 영문으로 된 간판이나 표지판도 철거되었다. 조선 사람들은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 쓰라고 강제 명령을 받았고 젊은 사람들은 일본 이름을 쓰고 있었다.

해주에 사는 영국 성공회 ‘캐럴 신부’는 셔우드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아이들도 그를 잘 따랐다.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어 여름휴가 때 화진포로 같이 가자고 그를 초대했다. 그와 같이 화진포로 간 일이 일파만파의 어려움이 될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1940년 여름, 가족들은 캐럴 신부와 화진포로 휴가를 떠났다. 해변은 조용했고 귀가 아프도록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승전 방송을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모든 게 다 평화로웠다. 그러나 이 평화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불과했다. 캐럴 신부가 일본군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8월 첫 주일, 화진포의 별장 뜰에서 호수와 바다에 반사되는 석양의 아름다움에 취해 넋을 놓고 있었다. 멀리 금강산이 보였다.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들어왔고 모든 게 평화로웠다.
다음 날 아침 7시쯤, 낯선 발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평복을 입은 헌 병 두 사람이 밖에 와 있었다. 그들은 캐럴 신부를 체포하려고 왔다고 했다. 일본 군대는 해발 2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는 절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화진포의 성은 해발 20미터 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헌병들은 캐럴 신부를 체포하고 떠나기 직전에 별장 지붕으로 데리고 가서 강제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안 돼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군부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셔우드가 뛰어 올라와 소리치자 헌병들도 단념했다. 헌병들은 캐럴 신부의 체포에 대해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가족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아침 집회시간이라 사람들이 해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캐럴 신부의 친구들은 헌병을 알아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챘다. 캐럴 신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그날로 성공회 세실 감독에게 전해졌다.
다음날 셔우드는 ‘요양원 일로 해주에 급히 오십시오’라는 전보를 받았다. 친구들은 함정일 수도 있다고 가지 말라고 했지만 혹시 요양원에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 첫 기차를 탔다. 아무 일이 없어 다시 화진포로 돌아올 때는 ‘Pets Well’이라는 전보를 치기로 매리언과 약속을 했다.
해주에 돌아오니 전보 친 일이 없다며 휴가 떠난 분을 돌아오라는 그런 전보를 누가 쳤느냐며 의아해했다. 셔우드는 찜찜한 마음이었지만 매리언에게 ‘Pets Well’이라고 전보를 쳤다. 다시 화진포 별장으로 돌아가려고 열차를 타려는데 낯익은 헌병 두 사람이 불쑥 앞에 나타났다.
“죄송합니다만 셔우드 선교사님, 당신을 체포하게 됐음을 알려드립니다. 당신은 해주에서 유명한 분이니 이곳에서 체포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이 명예를 존중하는 신사임을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 가서 도착하는 대로 헌병대에 출두하십시오!”
셔우드는 영문도 모르는 일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체포당한 사실을 알려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떠나면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으니 내일 아침 헌병대로 가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분고분한 셔우드를 보고 자선이라도 베푸는 듯 말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헌병대에 반드시 도착해야 합니다! 오늘 밤은 푹 자는 게 좋을 겁니다.”
헌병들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셔우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 이 위급한 사실을 알려야 할까?……’
셔우드는 해주 집으로 가지 않고 밤 기차로 서울을 향했다.
밤에 헌병이 체포하려 했는데 아침에 자진 출두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화진포의 성에 있는 매리언에게 알리면 놀랄 것 같아, 서울 젠슨 씨 댁으로 갔다. 젠슨의 가족들도 휴가를 떠나 없고 그의 친구들이 보급품을 가지러 왔다가 그날 밤 그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영국 총영사인 핍스와 아내 매리언에게 이 사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직접 연락하는 건 감정이 개입될 수도 있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작은 성경책 한 권만 들고 시간에 맞추어 헌병대로 갔다.
“당신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군요!”
헌병들은 셔우드를 추켜세우는 척하며 옆에 있는 빈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두 개의 의자가 마주 놓여 있었는데 그중 한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후 몸집이 크고 험상궂게 생긴 장교가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처음에는 정중한 태도로 생년월일, 출생지, 가족 사항 등의 의례적인 것을 묻고 세부적인 질문을 하더니 갑자기 돌변하였다. 헌병들은 셔우드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하고 때릴 것 같은 손짓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네가 스파이임을 알고 있다. 모든 걸 자백하면 더 이상 고문이나 문초를 받지 않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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