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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반란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향토사연구소 연구원)

2023년 01월 19일(목) 10:3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山高水麗, 山水之勝, 鳴沙十里海棠紅

글깨나 부릴 줄 아는 옛 사람들이 이 지방을 표현했던 말이다. 특히 ‘鳴(明)沙十里海棠紅(명사십리해당홍)’은 고려시대 시승(詩僧) 선탄(禪坦)의 시에 나타나는 시구(詩句)이며 후대 많은 식자들이 이를 인용하면서 알려진 명문이다. 고성은 산과 물의 고장이다. 예부터 간성군의 애칭이 수성(水城)이었다. 성안에는 3개의 우물과 4개의 연못(三井四池), 성밖에는 북천(北川)과 남천(南川)이 감싸 안고 흐르니 수성(水城)인 것이다. 그뿐인가. 호수와 바다는 더없이 수려하다.

동해안에는 해빈(海濱)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바닷가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모래가 많다 보니 그 이름도 가지가지다. 빛깔이 희고 깨끗한 모래(白沙), 가늘고 고운 모래(細沙), 곱고 깨끗한 모래(明沙), 쟁쟁(錚錚) 거리며 우는 모래(鳴沙) 등이 있다. 명사는 둘이다. 그중 고성의 명사는 울(鳴)모래(沙)다. 조선 중기 간성 현감을 지낸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은 『간성지(杆城志)』에서 명사(鳴沙)는 인마(人馬)가 밟고 지나가면 쟁쟁(錚錚) 거리는 소리가 나고, 명사의 으뜸 고장은 고성과 간성이라 하였다. 또한 문신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은 수성팔절(䢘城八節)에서 ‘명사로(鳴沙路)’를 노래하고 있다. 본래 ‘명사십리’의 지명은 원산의 갈마해변에 위치한 백사장으로 해수욕장이고 북한의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은 ‘明沙’다. 따라서 고성의 울모래(鳴沙)와는 구별해도 좋겠다. ‘鳴沙’는 고성의 고유 지명이다.

그럼, 우리 고성의 명사십리(鳴沙十里)는 어딜까? 옛 문헌자료에는 ‘울모래(鳴沙)는 公須津(지금의 공현진)’이란 기록이 있지만, 넓혀 본다면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송도와 감호에 이르는 해변, 반암을 지나 동호리에서 가진 카페촌에 이르는 해변, 공현진과 송지호를 지나 대섬(죽도)에 이르는 해변, 봉수대에서 자작도에 이르는 해변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명사십리에는 해당화가 붉게 피곤 한다. 한때 이곳에 피는 해당화는 군락을 이루며 떼로 피었다. 5, 6월이면 명사 옆 공동묘지는 붉은 향연이 펼쳐진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도 이제 흑백사진으로만 추억하게 되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다’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현재 해당화의 군락지는 크게 훼손되거나 거의 사라지고 없다. 가끔 그 밭이 사라진 명사길을 산책하곤 한다. 그 부재의 자리에는 빽빽한 해송만이 바닷바람을 맞고 서있다. 덩치가 너무 커진 해송은 왠지 낯설다. 내 추억은 오직 ‘명사십리에 해당화’뿐이다. 낯선 풍경을 헤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끈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모래를 밟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쟁쟁(錚錚) 소리는 언감생심일 뿐. 그러니 옛 사람의 시흥(詩興)과 정취를 느껴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또 있다. 명사를 만들어내던 바다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명사는 파도의 순수 창작품이다. 그런데 파도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해안의 침식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명사의 지대가 변형되고 그 품이 졸아들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해안침식의 원인을 대체로 기후위기와 방파제 같은 인공적인 해양구조물, 그리고 해안가 고층건물의 영향 등으로 보고 이런저런 방책을 쓰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그칠 뿐이다. 사물의 반란이다!

인간은 자연물을 비롯한 각종 사물을 이용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일상에서 사물은 늘 삶의 도구로 변신하기 십상이다. 인간의 신체조직은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물의 인간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선택이다. 역사와 문화의 기원도 바로 인간의 신체조직의 한계(결핍)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사물은 우리가 의도한 사물로만 되지 않는다. 사물도 그 자체에 본성이 내재해 있다. 만물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인간의 의지와 사물의 본성 사이에 어긋남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법의 이치다.

한편 우리 선조들은 자연물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무 하나 바위 하나에도 상징적인 의미(神性)를 부여하면서 살아왔다. 이러한 자연물에 대한 외경심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동티’라는 우리말이 있다. 이 말은 본래 ‘건드려서는 안 될 땅을 파거나 그런 나무를 베어서 그것을 맡은 지신(地神)이 노하여 받는 재앙’이란 민속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에 이 민속적인 용어를 소개하는 것은 사물의 인간화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데 있어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라는 의미라고 하겠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도 궁극적으로는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파괴라는 자연생태계의 교란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니 문제해결도 근본적일 수밖에 없겠다. 인간이 자랑하던 첨단과학과 의학기술로도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바다 역시 사물의 인간화로 인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및 해수면 상승, 해안침식, 미세 플라스틱의 역습 등 바다가 겪고 있는 문제는 생태계의 교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자연물이나 사물은 사용가치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 없다. 사물은 우리의 관념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아니 사물은 경험 밖의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즉 말할 수 없는 신비의 측면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나친 사물의 인간화는 오히려 인간에게 화(禍)를 초래할 수 있다는 그 부정성에도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비록 여기서는 단편적인 소재(素材)에 그쳤지만,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물의 신비성마저 배려와 조화의 관계로 인식했던 것이 선조들의 지혜였다. 오늘 이것을 다시 깨닫는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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