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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섬(竹島) : 유심하고 고독한 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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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부설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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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21일(화) 07:19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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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대섬은 대나무의 섬을 지칭하는 우리말이다. 대섬의 한자식 표현은 죽도(竹島)가 된다. 대섬은 죽왕면 오호리 앞바다에 있는 자연미가 빼어난 섬이다. 지명의 유래를 따지자면 대섬이냐 죽도(竹島)냐를 놓고 논란이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지역주민들은 주로 대섬이라고 불렀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도 죽도는 입에 붙지 않은 지명이다. 1967년에 한글학회가 발행한 『한국지명총람』에서도 대섬이 중심어다. 하지만 조선시대 많은 지지(地誌)자료에는 죽도(竹島)라는 한자로만 표기되었다. 이것은 한자문화가 지배층의 문화로 정착된 관행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한글은 언문(諺文)이라고 낮잡아 폄하되었던 것이 우리의 역사다.
한편 대섬은 예로부터 간성군의 주요 지명에 올라 있다. 먼저 1914년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위한 지방행정개편으로 면폐합이 되어 죽왕면이 되기 이전까지 조선시대 간성군 죽도면(竹島面)의 행정지명도 대섬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섬에 군사가 주둔했던 옛 건물의 터가 있고, 오동나무와 대나무(箭竹)가 많다’는 기록과 함께 토산품으로 죽도와 무로도(無路島: 봉포리)의 죽전(竹箭)을 들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인물이 바로 1630년대 초 간성 현감을 지낸 택당 이식(澤堂李植)이다. 그가 남긴 대섬에 관한 두 편의 시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내가 죽도 와서 노닐어 보니 / 我來遊竹島
여기가 아마도 봉래(蓬萊)요 영주(瀛洲)인 듯 / 此地疑蓬瀛
초록빛 대나무 숲 우거져 있는 데다 / 猗猗琅玗綠
난새 봉새 노랫소리 어우러져 들려오네 / 況聞鸞鳳鳴
치달리는 물결 위에 흩날리는 흰 눈발 / 奔濤接飛雪
밤낮으로 바람과 우레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 日夜風雷驚
변치 않는 것은 오직 푸른 대숲 하나 / 靑蒼獨不渝
비린내 나는 오랑캐 요동(遼東)을 횡행하여 / 腥膻漫遼左이 해변 고을까지 군수품 나르게 하는고 / 供給窮海陲바야흐로 이 봄철에 고생하는 이졸들 / 方春役吏卒짐 가득 실은 배 넘어질 듯 기우뚱 / 舟楫顚且欹곧은 화살대 부족해서 걱정이지 / 但恐直簳少많다면야 이 모험 어떻게 사양하랴 / 豈辭乘險危 *해석 : <한국고전종합DB>
처음 시는 ‘죽도(竹島)에서 노닐면서 시초(蓍草) 대신 대나무 가지로 점을 치다’라는 제목의 시로 죽도를 유람하면서 대나무로 점을 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죽도를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 :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띤다. 삼신산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고전인 『열자(列子)』나 『사기(史記)』에 등장한다. 여름 금강산의 별칭인 봉래산(蓬萊山)의 유래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두 번째 시는 ‘다시 죽도에서 노닐면서 화살대를 모으다’란 제목의 시로 군수품인 화살대(箭竹)를 조달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데리고 죽도를 방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변방의 고을에서 군수품을 조달하는 관리의 우국(憂國)에 대한 충정을 노래한 시다. 두 시의 내용으로 볼 때, 당시 고을 현감이 대섬을 두 차례 방문한 것은 대나무와의 인연 때문이다. 그는 시에서 “대의 천성 원래가 유심(幽深)하고 고독하니(受命本幽獨) 선경(仙境) 지키기에 참으로 적격이라(眞堪閟仙蹤)”고 대나무의 상징적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섬의 그윽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섬의 가치를 새삼 일깨우는 시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어린 시절 친구들과 몇 차례 대섬에 건너가 수영하면서 섭을 따왔던 추억이 있다. 그때 섬 안에 있는 작은 모래밭에서 방풍(防風)이 자생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새롭다. 송지호해수욕장이 한여름 피서객들로 들끓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대섬은 걸어서도 건너갈 수 있었다. 지금 대섬은 과거에 비하면 육지로부터 훨씬 멀어진 느낌이다. 해안침식과 해수면상승이 초래한 결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섬은 유적지다. 유적지는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고 공동체의 흔적이 묻어나는 장소다. 그래서 무덤처럼 침묵의 심연이 흐르는 곳이다. 그 심연의 소리를 통하여 새로운 서사들이 탄생되는 공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대섬은 소중한 자산이다. 이처럼 대섬은 문화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섬이지만, 또한 섬 자체의 자연적인 풍경만으로도 그 가치를 품고 있다. 택당 이식의 시가 그 장소에서 탄생된 것처럼 문학과 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한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본래 이 말은 중국 선사(禪師)로부터 비롯된다. 필자가 그 철학적 의미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인간이 깨달음의 과정에서 만나는 산과 물의 여여(如如)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그러한 자연의 여여한 존재의 빛을 ‘사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삶의 피로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조의 힘을 인생의 주요 덕목으로 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근 대섬의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아마 계획대로라면 택당 이식이 묘사했던 대섬의 유심하고 고독한 선경(仙境)의 고유한 분위기(아우라)는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욕망에 갇히지 않는 자연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한편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려는 대중적인 욕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떤 형식(문화)으로 향유하고 즐기는가는 또 다른 차원이다. 바로 이 문제에서 우리는 많은 고민과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여기서 공동체의 지혜가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자연도 그 존재의 몫이 적지 않음을 환기하면서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그것에 대한 섬세한 배려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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