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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와 트롯영웅

금강칼럼 / 박선애 칼럼위원(시인)

2023년 04월 05일(수) 08:3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날씨가 무척 따뜻해졌다. 낮에 운전을 하면서 덥다고 느낄 정도의 갑작스런 따스함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진부령 쪽 마을길을 지나면서 도로 옆 야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만나니 아이 같은 미소가 절로 나온다. 소박하지만 감사가 넘치는 행복이다. 계절이 다시 가져다 준 낭만에 취해 오랜만에 카오디오를 재생하여 귀 호강까지 하니 세상에 부러운 이가 없다. 흘러나오는 트롯을 듣다보니 최근 이슈가 되었던 한 가수가 떠올랐다. 그도 지금 이 계절이 봄이라는 걸 느낄까? 찬란한 봄의 문턱에서 멈춰버린 그의 인생행진이었기에 그의 근황과 심중이 궁금해졌다.

사회는 왜 학폭에 분노할까?

모 방송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트롯오디션 프로그램의 유력했던 후보자. 우승의 문턱에서 그의 발목을 잡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것은 과거 학폭 문제였다. 프로그램 인기가 상승하면서 시청률이 오르자 피해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피해자를 울리는 목소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는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사람이었을까. 때 맞춰 폭발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대중들은 학폭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더 끌어올리게 되었고, 끝끝내 버티려 애썼던 그는 결국 결승 한 주 전에 우승을 포기하고 하차하고 말았다. 6억이 넘는 상금과 보장된 ‘황금길’을 코앞에서 포기하는 안쓰러움 보다 누구나 짐작 가능했던 계산으로 전술을 바꿨다는 생각에 나는 또다시 실망했다.

2개월 남짓 텀을 두고 방영된 드라마의 영향으로 학폭문제는 시들 새 없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심각성을 알리게 되었다. 왜 유독 학폭일까? 세상에는 수많은 폭력이 난무하는데 말이다. 성인이 되기 전 불완전한 인격체로서 혹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철없고 어릴 때의 실수’ 일 수 있는데 사회는 왜 학폭에 분노할까? 실제로 오디션 우승후보의 하차로 그의 팬들은 한마디로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언론이 마녀사냥을 한다느니 증거도 없이 죄인취급을 한다고 항의하는가하면, 강남에 대형 사진을 걸고 그의 과거를 집중 취재한 프로그램 방송중지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수의 팬이 원하는데 소수의 피해자들 때문에 앞길이 구만리인 젊은 사람의 꿈을 한 때의 실수로 꺾는 것은 잔인하다고 외친다. 그 사이에서 나도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결론을 내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가 과거의 누구에게 무슨 짓을 했던 무심하다. 더구나 내 귀를 행복하게 해주거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면 영웅적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나는 아니니까 상관없어’라는 생각에 방관자가 된다. 하지만 그 피해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 내 형제자매, 내 손자손녀라고 단순 가정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최근 한 방송사 인기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학폭피해자인 일반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녀는 성인이 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까봐 혼자서 짊어지고 견뎌야했던 학창시절과 그 아물지 않은 상처로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을 불과 몇 달 전 알게 되었다며 그녀의 부모는 울먹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또한 학창시절 고통 받았던 수 십 년 전 경험과 엄마가 된 후로는 아이의 교우문제로 힘들었던 유경험자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했고 그녀의 부모와 함께 눈물 흘렸다.

‘어린’ 시절, 혹은 ‘먼 먼 과거’의 ‘실수’라고 가해자의 잘못을 가볍게 넘기기엔 피해자의 상처 범위가 너무 크다. 피해자 역시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모른 채 그 ‘어린’ 몸으로 고스란히 고통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기 전 완성되는 사회성과 자신감에서 분리되고 그로인해 평생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야 하는, 삶 전체가 일그러지는 고통을 도대체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용서의 미덕도 필요하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죄값을 치르게 하는 교도소에서도 장기수에게 가석방이나 형기단축 등으로 갱생의 기회를 당겨 주기도 한다. 문제는 ‘자격’이다.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이 필요하다. 교도소에 있는 죄수라면 모범수로 분류되어야 하듯이 학폭 가해자는 진정성 있는 반성에 따른 사죄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폭 가해자들은 ‘증거’ 운운하며 덮어버리거나 대충 형식적인 달래기에 급급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이것도 연예인들이나 되어야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이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문신이 되고 만다.

과거에 자신이 던진 부메랑

학폭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그냥 장난’, ‘사이가 안 좋았을 뿐’ 이라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비인간적인 잔인함으로 정확한 표적을 향해 던진 돌멩이에 누군가는 지옥과 같은 마음의 창살에 무기수로 갇혀 인생의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재능이 뛰어난 연예인들이 학폭에 말려서 조용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가끔 기사에 나온다. 억울하다는 하소연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정말 깨닫길 바란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대중으로부터의 소외감, 낮은 자존감, 두려움, 절망이 과거에 자신이 던진 부메랑이라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문제 가수의 연예 활동을 반대한다. 그저 참회하며 조용히 성실하게 살아서 혼자 힘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약자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드는 월권을 행사한 가해자가 연예인으로 성공하여 대중의 엄청난 사랑을 받아 호의호식하는 건 순리의 역행이라고 생각한다.

용서와 벌. 누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이런 훌륭한 말은 적어도 참회 없는 학폭 가해자들만큼은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 무한한 사랑을 가진 신도 눈물의 회개를 하는 자만 용서한다. 눈물의 진위도 신이 판단할 몫이다. 반성에 앞서 끊임없이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트롯영웅에게 내가 끝내 기대를 저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표면적이라도 자신을 벌하는 시간을 갖고 자숙하는 양심적 액션은 보여줘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서 면죄부를 준다면 앞으로 학폭의 근절은 절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학폭에 대한 사회적 냉담한 시선을 보다 지속적으로 냉혹하게 조성하여 우리 아이들이 학폭이 낳는 리스크와 삶의 광범위한 파장을 직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더 나아가 가해자의 탄생을 막거나 삶의 나락에서 미리 건져내는 구원자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가 방관자였다면, 이제는 피해자를 돕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잠재적 가해자와 2차, 3차 피해자의 생성을 막아보면 어떨까.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구제하려는 한 사람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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