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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절경 위에 근대사를 품은 별장들

新 고성기행 ④ 화진포2- 이승만 별장·이기붕 별장
권력의 상징 … 4.19혁명 후 방문 끊겨
주인을 잃고 빈 채로 늙어가는 별장들

2023년 08월 02일(수) 08:51 [강원고성신문]

 

↑↑ 주인을 잃고 빈 채로 늙어가는 이승만 별장과 이기붕 별장은 근대한국사를 아우르는 역사의 한 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만 별장.

ⓒ 강원고성신문

화진포과 곁을 같이한 화진포의 성과 불과 3km 떨어져 있는 우남 이승만별장은 부인과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건립되었다.

북한으로부터 땅을 수복한 기념으로 별장을 건립했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부러 김일성별장에 이 별장을 건립하고 김일성에게 무언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과 북으로 휴전된 상태에서 이승만은 자신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남겨진 이승만 별장은 권력의 상징이자 한 권력자의 삶의 일부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 별장은 단층 석조 건물로 면적은 약 27평이다. 집무실, 침실, 거실을 재현하였다. 이승만 부부가 사용한 침대, 낚시 도구, 의복, 의장, 안경, 장갑, 여권, 편지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하고 있다.

별장 뒤 ‘이승만대통령 화진포기념관’에는 친필 휘호, 의복, 소품, 도서 등을 전시해 놓았다. 지척의 거리에 있는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과 함께 역사안보전시관을 이루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 별장을 사용하던 때인 1954년부터 1960년은 그의 정치 인생 중 권력의 정점에 섰던 시기와도 일맥상통하다.

1954년은 교통부 광장에서 ‘철도창설 55주년 기념 이승만 대통령 흉상 제막식’이 열린 해이기도 하다. 1956년 3월 31일에는 서울 탑골 공원에 이승만 동상이 설치되었다. 이승만의 8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24m 높이의 동상이 제작된 것이다. 같은 해 8월 15일 이 동상의 제막식에서 이승만에 대한 만세 삼창이 이루어지고 서울 하늘에서는 축하불꽃놀이가 열렸다. 하지만 이 동상은 1960년 4·19혁명 이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처 철거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화진포의 이 별장 역시 다시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 이기붕 별장.

ⓒ 강원고성신문

권력의 정점에서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가 사는 것은 수도승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넓은 마음씀씀이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기붕이다. 한 때 대통령의 측근으로 권력의 달콤함에 취했었던 이기붕은 화진포 세 번째 성을 지으면 어떤 삶을 꿈꾸었을까?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다. 하늘 높이 날았다가 다시 바닥에 내려앉아야 먹이를 구하는 새들처럼 황망한 구름 속의 몸짓들은 저마다 높이 날아오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어느 순간에 여기까지인가라는 반문을 하는 순간, 이미 바닥에 내려앉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 집권 당시 부통령으로서 이승만 대통령과 정치적으로도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이는 그의 별장이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과 인접해 있는 연유이기도 하다. 이 별장은 이기붕 가족을 위해 신축된 건물은 아니다.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 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휴전 이후 이기붕은 미국 유학시절 이승만과의 인연으로 귀국 후 제2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게 되었다. 1949년 6월 서울시장에, 1951년 5월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1952년 3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954년부터 자유당 전성시대를 열어 권력의 2인자로서 독주하였다.

그의 아내 박마리아 여사 역시 외국 유학 후 이화여대 부학장과 YMCA 회장을 역임하는 등 1950년대를 풍미한 우먼파워의 상징적인 존재로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막역한 관계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1960년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권력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이 별장 역시 주인을 잃은 채 빈집으로 홀연히 남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 역사책에서나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도 이기붕의 이야기는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들이 남기고간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은 오를 때와 다시 내려올 때의 마음이 같아야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고 그것이 정당성을 갖게 되었을 때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바다와 호수, 숲의 아름다움은 권력자들에겐 그저 여유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또 다른 테마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살피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주인을 잃고 빈 채로 늙어가는 두개의 별장은 근대한국사를 아우르는 역사의 한 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그 아는 것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자박자박 발에 밟히는 자갈 마당을 거닐며 필자는 그런 질문을 하고 있다. 권력의 최고점 찍었던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 이 세 사람은 이곳을 서성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미영 기자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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