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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시대 100년의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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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형의 변동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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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07일(수) 06:16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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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수성(䢘城)과 가라홀(加羅忽)이란 고구려 지명을 가진 유서 깊은 간성군(杆城郡)은 1919년 5월 15일 고성군(高城郡)으로 행정지명이 변경되었다. 동시에 남쪽의 토성면과 죽왕면이 양양군으로, 북쪽에서는 통천군 소속이었던 장전(항)을 비롯한 일부 지역이 고성군으로 편입되었다는 내용을 앞선 칼럼에서 소개하였다. 또한 왜 이러한 변동을 겪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제시했다. 오늘의 주제의식은 이러한 행정적인 지명의 변동과 함께 초래된 우리 지역의 문화적인 지각변동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흔히 관동팔경이라 하면,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평해의 월송정, 울진의 망양정을 꼽는다. 즉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이었다. 그런데, 1919년 5월 이후에는 ‘양양의 청간정’이란 말이 덧붙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청간정이 간성의 자랑이 아니라 양양의 명승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뿐인가. 토성면 신평리에 있는 천년고찰 화암사를 비롯하여 울산바위, 화랑의 신선이 다녀갔다는 (지금의 속초) 영랑호, 죽왕면 오호리에 있는 송지호, 공현진의 선유담, 문암리의 능파대가 모두 양양(군)의 명소가 되었다.
간성의 청간정이 양양의 청간정으로
이처럼 간성의 명소들이 새로운 고장에서 자신의 전통적 가치를 선보일 때, 고성군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지로 문화지형을 새롭게 펼쳤다. 당시 금강산은 경원선의 개통(1914)과 함께 강원도의 명승지요 조선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한편 통천에서 분리된 장전(長箭)은 금강산의 교통요지(海路)이면서 고성군의 어업 및 수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이제 고성군의 주요 어업기지는 북쪽의 장전항과 남쪽의 거진항이었다. 옛 간성의 남쪽 아야진항은 양양의 북쪽 주요 어항이 되었다.
이처럼 양양의 아야진에서 고성의 거진을 거쳐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손꼽히는 명사(鳴沙)의 화진포 해변에 가닿는다. 이곳을 찾는 이라면 누구든 화진포와 잘 어우러진 섬, 초도(草島)를 발견한다. 지금은 ‘금구도(金龜島)’, 일명 거북섬으로 널리 알려지고 초도란 이름은 잊혀졌다. 그래서 거북섬에 얽힌 설화(?)적인 이야기까지 등장하면서 한때 학술적인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바로 그것은 ‘광개토대왕릉’과의 연관성을 검토한 일이다. 여기에는 많은 행정력이 동원(낭비)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금구도 현상’은 어떤 장소가 갖는 이름(지명) 하나로 촉발되는 상상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 실증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금구도 현상은 고성의 집단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섬의 지명을 한번 따져보자. 옛 문헌자료들에는 ‘草島’로만 표기되어 있다. 그럼 언제부터 금구도였을까?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로는 1910년대 후반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에 제작된 지도에는 금구도가 아닌 초도(草島)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인근 주민들은 그 섬을 어떻게 불렀을까? 1911년경 전국적인 지명조사로 일본제국의 관료들이 작성한 『조선지지자료』에서도 공식 지명은 ‘초도’이고, 언문(諺文) 표기는 ‘샘슴’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문표기란 마을주민들이 ‘샘슴’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의미다. 인근 마을사람들도 ‘샘섬’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1930년대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금구도(거북섬)’이란 지명의 역사는 고성군 100년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지명의 유래(기원)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초도(草島)-샘섬 … 금구도 논란
고성군 시대, 문화지형의 변동에서 꼭 주목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청간정의 재건과 천학정의 창건이다. 지금의 청간정은 본래의 위치가 아니다. 이전의 청간정은 만경대(군부대의 접근금지구역내 위치) 옆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 회록(回祿, 화재)(1884년이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으로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 있었다. 이것을 안타까워하던 토성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재건에 나서게 되었다. 토성의 동성청년회가 연극회를 만들어 앞서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하는 등 면장과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재건한 것이 1929년의 업적이었다. 당시 청간정을 재건하면서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현재의 장소로 이동하여 지은 것이 오늘의 청간정이다. 그러나 이 청간정의 재건사업은 양양군의 새로운 명승지로 거듭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문화적인 사건은 토성면 교암리의 천학정(天鶴亭) 건립이다. 청간정의 재건 사업에 고무된 교암리 마을 유지들이 1930년에 창건한 것이다. 지금은 고성팔경의 하나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지역 명소다. 그런데 창건 당시에는 양양군의 명소로 새롭게 탄생한 건축물이었다.
이처럼 양양군에 편입되었던 토성면과 죽왕면이 고성군으로 재편입된 시점은 1963년이다. 이때부터 청간정은 옛 ‘간성의 청간정’으로 돌아온 셈이다. 영랑호 역시 함께 고성지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영랑호는 1973년 속초시로 다시 편입되고 말았다. 개발의 시대적 논리에 희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속초시는 영랑호로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예로부터 영랑호는 ‘간성의 땅’이었다. 간성의 영랑호와 속초의 영랑호는 다른 영랑호가 되었다. 이렇게 역사는 흐른다.
지금까지 행정지명의 변동, 즉 간성군에서 고성군으로, 혹은 양양군으로 변경함에 따라 나타나는 문화지형도를 살펴보았다. 영랑호, 청간정, 천학정, 능파대, 송지호, 선유담 등은 한때 양양의 명소들이었다. 지금은 속초‧고성의 명소로 거듭나거나 변모하고 있다. 그밖에 많은 문화자산들이 고성군을 빛내고 있다. 이제 지역의 문화적 공유자산을 아끼고 보호하는 일에 실천적인 지혜가 모아졌으면 한다. 또한 새로운 문화자산을 발굴하고 재창조하는 일에도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고성군이 이러한 공유자산에 행정력을 얼마나 집중하고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물음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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