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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금강칼럼 / 박봉준 칼럼위원(시인)

2025년 07월 08일(화) 10:5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독립운동가이며 소설가인 광야의 시인 이육사는 그의 시 「청포도」에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했다.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민족의 고난과 희망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6.3 대선이 진영에 따른 불만은 있겠지만 그런대로 무사히 끝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염려하는 그것과 각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개별적인 불만들은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땅속에서 마그마처럼 숨을 죽이고 추이를 관망하고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 보통 시민들이 대선 후에 바라는 것은 우선 민생 회복이며 국정 안정이다. 역대 당선자들도 매번 그런 마음으로 당차고 정의롭게 시작하였으나 결과는 대부분 불행한 역사를 남겼다. 이번에도 과연 이육사가 그의 시에서 바라는 싱그러운 청포도가 익어가고 우리의 식탁에 은쟁반에 하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보통 시민들이 바라는 건 민생 회복

돌이켜 보면 지난 반년은 우리에게 참으로 위험한 시기였다. 여러 차례 사상 초유의 일들을 경험하고 나라 전체가 발가벗은 채 외부로 드러나는 야생에서는 그야말로 상급 포식자에게 먹잇감이 되기 십상인 비상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경제성장과 군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민주주의 대한 의식 수준과 나라 살림을 맡고 있는 공직자들의 흔들림 없는 자세 하나하나가 힘이 되어 위기를 극복했다고 필자는 평하고 싶다. 가끔 조그만 폭동에도 매점을 강탈하고 필수품을 사재기하는 외국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이번 12.3 계엄 사태 이후 일시적인 문제점이 노출되었지만, 전체적인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높게 평가할 수 있겠다.

일상의 회복은 그래도 큰 소요 없이 끝난 대선과 키를 잡은 대통령의 빠른 행보와 추경 등 경제회복의 기대감에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관세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라 경제회복을 조기에 수습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추경으로 일시적인 숨통은 틀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결국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의 귀와 눈은 미국의 법원에 쏠릴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무지막지한 관세정책은 외국뿐만 아니라 자국인 미국의 경제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최근에 불거진 이스라엘과 이란의 위기는 자칫 제5차 중동전으로 확대할 조짐이 보여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제와 인류의 삶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명분을 얻어야

우리의 역대 다수의 정부는 예외 없이 권력의 함정에 빠졌다. 절제하지 않고 권한을 남용하거나 협치의 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제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언론과 시민단체, 뜻있는 국가 원로들은 이번에도 통합을 주장한다. 통합은 봉합의 한 방편일 수 있으며 통합으로 가는 첫 단추는 인선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으로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다. 이 말의 뜻과 중요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이 인사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으며 결국 이 인사의 잘못으로 대부분의 권력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불행을 맞이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쓴다는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회사나 단체 어느 곳에서도 무시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다.

이번 정부는 국회의원 170여 석을 가진 슈퍼 여당이다. 국회 200석 이상 동의가 필요한 ‘개헌’ 정도를 제외하면 야당의 협조를 구할 필요도 없는 무소불위의 정부다. 여당과 야당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된 이번 정부와 여당은 그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 그 못할 일이 없는 것 중에 ‘청산’과 ‘척결’은 늘 권력을 잡은 새로운 정권의 전가의보도(傳家의 寶刀)처럼 행해졌다. 그 전가의 검을 함부로 휘두르거나 아무 때나 사용한 탓으로 정권이나 권력이 스스로 무너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마치 벌레잡이통풀의 통 안에 있는 달콤한 액체에 취해 결국은 잡아먹히는 그런 꼴이 되기 십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고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만든 <함무라비 법전>을 설명하는 문구로 유명하다. 텍스트 자체는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실 그 내용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달리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는 그 외형적인 텍스트만 보고 사용하고 있는 꼴이다. 그동안 억눌린 감정으로 너도 한 번 당해보란 듯이 응징을 앞세운다면 그 또한 정치보복이라는 뻔한 구설에 오를 수 있는 만큼 정의롭고 공정한 명분을 얻어야 할 것이다. 내 편에서 보면 언제나 정당하고 언제나 억울한 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될 것이다. 필자 또한 그런 감정인데 하물며 그런 고초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다리던 기회가 아니겠는가?

조선 말기에 영조와 정조가 당쟁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당파 간의 정치 세력의 균형을 꾀하는 ‘탕평책’을 써서 후대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권력의 싸움은 작금의 현실뿐이 아니다. 바라건대 그런 탕평책은 아니더라도 올바른 정책과 인사로 오랜만에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향기와 은쟁반에 하얀 모시 수건이 걸린 식탁을 맞이하였으면 좋겠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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