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고성문학회 회원작품 릴레이특집여성-여당당노인-노년시대청소년-1318종교-더소울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고성문학회 회원작품 릴레이

특집

여성-여당당

노인-노년시대

청소년-1318

종교-더소울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기획/특집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애끼미’라 부르던 저진역, 지금은 민통선 구역이라 오갈 수 없어

김담 작가의 ‘옛 동해북부선 철길을 걷다’<7> 저진역

2025년 07월 31일(목) 07:50 [강원고성신문]

 

↑↑ ◇ 저진역(고성군 현내면 저진리)은 동해북부선 고성-간성 구간의 일부로 1935년 11월 1일 간이역이 아닌 보통역으로 개통되었다. 저진역이 제진역이 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진역 터와 제진역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므로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

ⓒ 강원고성신문

“옛날 저진역은 저기 바닷가 쪽이었는데, 새로 지은 역은 상당히 안쪽으로 들어왔어요. 역이름도 제진역이 아니라 저진역이었고요.” 일제강점기인 1942년~1944년까지 주로 동해북부선 기차를 운행했던 기관사 강종구(85세) 옹은 2006년 5월 서울신문과 이런 인터뷰를 했고, 1958년 현내면 명파리에 입주하여 마을 이장 등을 역임하며 내내 살고 있는 윤범운(55년생) 씨도 옛 저진역은 제진리 통일전망대로와 사천2교차로가 만나기 전, 지금은 밭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 오른쪽이라고 덧붙였다. 저진역(고성군 현내면 저진리)은 동해북부선 고성-간성 구간의 일부로 이 또한 1935년 11월 1일 간이역이 아닌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개통되었다. 그러나 어른들이 애끼미라고 부르던 저진, 저진역이 제진역이 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진역 터와 제진역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므로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

제진역(고성군 현내면 사천리)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출입사무소가 설치되었고, 2002년 9월 18일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도로 착공식을 개최하면서 이남 구간은 2004년 4월 군사분계선을 지나는 선로가 복원되었고, 2005년 12월 제진역까지 공사가 완료되었다. 남북철도 연결 구간 시험운행은 2007년 5월 17일, 경의선은 파주시 문산역에서 남쪽 열차가 북쪽 개성역으로 향했고, 동해선(동해북부선)은 북쪽 고성읍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쪽 제진역을 향해 북쪽 열차가 출발하였다. 한국전쟁 와중에 기차 왕래가 끊긴 뒤 처음, 남과 북을 향해 기차가 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을 딱 한번 그렇게 넘나들었다. 곧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되어 금강산은 물론 원산 지나 함흥, 청진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모스크바에 이어 유럽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종단철도가 연결되어 유럽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 ◇ 옛 현내역 터를 지나 금강산로로 바뀐 기찻길을 내딛다 보면 도로 표지판에 ‘온정’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강원고성신문

옛 현내역 터를 지나 금강산로로 바뀐 기찻길을 내딛다 보면 도로 표지판에 ‘온정’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쪽 강원도 고성군 고성읍 온정리는 온정리역으로도 불리던 외금강역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역이름도 금강산청년역으로 바뀌었지만 그 옛날 금강산관광을 하려고 기차를 탔던 이들이 하차했던 곳이었다. 다시 금강산관광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걸으면 이윽고 금강산로와 한나루로가 만나는 대진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지 않고 곧게 나가면 현내터널이라고 알려진 ‘무송정굴’을 만난다. 우거진 수풀을 지르밟으며 입구 쪽으로 다가가면 철망으로 막혔으나 저쪽 끝이 환히 보인다. 1933년 5월, 한 신문은 이 현내면 마차진리 ‘턴넬 구내에서 턴넬이 무너져 20여 명이 생매장’되었다고 전한다.

↑↑ ◇ 다시 금강산관광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걸으면 이윽고 금강산로와 한나루로가 만나는 대진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지 않고 곧게 나가면 현내터널이라고 알려진 ‘무송정굴’을 만난다.

ⓒ 강원고성신문

기차가 등장하면서 표준시도 생겼지만, 어떤 시간은 고인 물처럼 바닥을 맴돌 뿐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철망으로 막히기 전 이 굴에서 소를 키우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그대로 굴속을 걸어서 저쪽으로 가고 싶었으나 고작 150미터쯤 된다는 그 길을 통과할 수 없어 길게 돌아서 저쪽 굴 입구에 섰다. 굴 입구 처마에는 뿌리가 뽑힌 참나무가 거꾸로 매달렸고, 어느 날은 신촌마을 골목길을 확·포장하는 공사로 베어낸 나뭇가지들을 쌓아 굴 입구를 막았다. 길을 꺾어 조선초 문신 무송부원군 유자운의 본관을 따서 무송정이라고 부르게 된 솔숲, 송도로 향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 서낭당이 있는 곳으로 멀리서도 소나무 우듬지가 보일 정도로 서낭은 우뚝하고, 소나무 보굿을 어루더듬으면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나는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들은 오방색 천을 드림처럼 묶었다.

↑↑ ◇ 이곳은 마을 사람들 서낭당이 있는 곳으로 멀리서도 소나무 우듬지가 보일 정도로 서낭은 우뚝하고, 소나무 보굿을 어루더듬으면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나는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들은 오방색 천을 드림처럼 묶었다.

ⓒ 강원고성신문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 어딘가에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서 아직 꽃 피지 않은 순비기나무들 사이를 지나 다시 무송정굴 앞, 마차진길로 바뀐 기찻길에 들어섰다. 안보공원 교차로에서 통일안보공원에 들르지 않고 호림유격전적비 앞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다시 금강산로로 이름이 바뀐 기찻길을 만나고, 마차진 굴다리 옆을 지나면서 동해대로가 생기면서 흡수, 통합된 기찻길을 가늠했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어서 산양이라도, 멧돼지라도 한 마리 만나게 되면 즐겁지 않을까, 하지만 발밑에는 묵은 낙엽들만 채일 뿐 다붓한 길은 때때로 으스스한 기분마저 자아냈고 그리하여 처음 듣는 새소리에 귀를 재기도 했다. 서너 번 걸었지만 걸을 때마다 혼자 걷는 길이 아까워서 과수원 울타리에 앉은 바다직박구리를, 무성한 찔레꽃 덩굴을,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서 해찰하다 보면 어느새 배봉굴로 이어지는 동해대로 굴다리에 다다르곤 했다.

↑↑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 어딘가에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서 아직 꽃 피지 않은 순비기나무들 사이를 지나 다시 무송정굴 앞, 마차진길로 바뀐 기찻길에 들어섰다.

ⓒ 강원고성신문

마차진리에 있던 검문소가 안보공원 뒤쪽으로 다시 쑥고개로, 또다시 명파마을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느 때는 명파교에서 불심검문을 당했고, 또 어느 때는 오라비와 함께 명파교 다리 아래서 은어를 잡았으며 또 어느 날은 더덕을 캐다 지뢰가 터져 주검조차 수습하기 어려웠다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아무 걸림 없이 민북마을이었던 명파리까지 갈 수 있었지만 지금도 쑥고개에 검문소가 있던 시절 저녁 5시만 되면 두 쪽으로 된 거대한 철문이 닫혔다는, 그 어둠의 경계처럼 아직껏 보이지 않는 눈들과 매복하는 이들이 있을 듯한 기시감에 시달렸다. 배봉굴은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길고 높은 옹벽이 좌우로 이어졌고, 그 길은 걷기 어려웠으므로 논둑을 따라서 굴 입구 언저리에 섰다. 죽은 고라니의 사체를 만나기도 했던 흙바람이 날리던 논들에는 모들이 심겨졌고, 제법 모살이를 한 벼들은 푸른 들을 이뤘지만 수풀 또한 우겨져서 가만가만 수풀들을 지르밟으면서 옹벽을 뚫고 자란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기찻길은 다시 금강산로로 바뀌지만 문득 끊어지고

↑↑ ◇ 배봉굴은 자그마치 400미터에 이른다지만 이곳도 철망으로 막혔다.

ⓒ 강원고성신문

↑↑ ◇ 전쟁의 와중에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던 쑥고개에서 잠시 골짜기를 맴도는 파랑새를 올려다보다, 대전차방어벽을 바라보다 백두대간로를 따라 배봉리 마을 쪽 굴 입구로 향했다.

ⓒ 강원고성신문

전쟁의 와중에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던 쑥고개에서 잠시 골짜기를 맴도는 파랑새를 올려다보다, 대전차방어벽을 바라보다 백두대간로를 따라 배봉리 마을 쪽 굴 입구로 향했다. 길은 에움길이었으나 길섶에는 엉겅퀴도, 중나리도 꽃을 피워서 벌과 나비를 불러들였다. 배봉굴은 자그마치 400미터에 이른다지만 이곳도 철망으로 막혔다. 마차진리 신촌마을 어르신들은 쑥고개에 검문소가 있던 시절 배봉리 야산에서 땔감을 해서 머리에 이고 구멍이 생긴 천정에 팔뚝만한 고드름이 언 굴속을 군인들 몰래 오갔고, 고사리를 꺾어 집을 마련했다던 명파리 어르신은 통금시간을 어기면 배봉굴을 통해서 명파리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였으나 이제 굴 입구 처마에는 말벌집이, 레일이 놓였던 자리엔 도랑물이 흘러 미나리, 고마리들을 키웠다.

↑↑ ◇ 고성 관내에서는 가장 높았을 배봉철교는 배봉천 양쪽에 다리받침만 남았고, 냇바닥에는 다릿발 대신 전차 통행을 방어하기 위한 용치가 빽빽했으며 명파 쪽 다리받침에는 동해북부선 벽화를 그려 노선과 역이름을 표기했으나 고성역에서 금강산역은 순서와 이름이 틀렸다.

ⓒ 강원고성신문

고성 관내에서는 가장 높았을 배봉철교는 배봉천 양쪽에 다리받침만 남았고, 냇바닥에는 다릿발 대신 전차 통행을 방어하기 위한 용치가 빽빽했으며 명파 쪽 다리받침에는 동해북부선 벽화를 그려 노선과 역이름을 표기했으나 고성역에서 금강산역은 순서와 이름이 틀렸다. 제진역 다음 초구역 그리고 고성역 삼일포역 외금강역이라고 했어야 했다. 배봉천을 사이에 두고 배봉리와 명파리를 잇는, 옛 동해북부선 철길을 도로로 개설하는 과정에서 2000대 초 군(軍)에 의해 지뢰제거 작업이 선행되었고, 제거된 지뢰는 17,300발이었으며 배봉교 부설 공사는 2016년 7월~ 2019년 7월까지 진행되었다. 명파리 태생인 이범규(1938년생) 어르신은 배봉철교를 지나면 만나는 오르막에 간이역이 있었다며 장소를 알려주셨는데, 조선총독부 관보에는 없으니 아마도 인공시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새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 ◇ 기찻길은 다시 금강산로로 바뀌지만 문득 끊어지고, 멀리 옛 제진검문소와 맞닥뜨린다.

ⓒ 강원고성신문

마을 주택들 사이를 지난 기찻길은 명파3길로 바뀌었고, 논들에 있는 둥근 말무덤도 지나면 광산천에 다다랐다. 길 끝 다리받침 앞에서 조제암길을 따라 가면 조제암터와 명파 서낭당을 만날 수 있지만 그곳은 아직도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었으므로 광산천을 가로지르는 명파2교를 건너서 철둑에 섰다. 광산천 양쪽에 있는 다리받침을 볼 수 있고 이어서 북쪽으로 향하는 철둑길도 만날 수 있지만, 북쪽을 향해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지프를 탄 군인의 경고를 받을 수도 있다. 기찻길은 다시 금강산로로 바뀌지만 문득 끊어지고, 멀리 옛 제진검문소와 맞닥뜨린다. 1962년 12월 30일 자(字) 조선일보는 “레일이 떼어진 저진역은 역부가 신호등을 켜던 낡은 시멘트 기둥이 두 개 남아 있을 뿐 역사는 타 없어져 찾을 길 없고 철길이었던 높은 둔덕엔 가시나무, 잡풀이 한길씩 우거져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