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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제진 구간 공사 한창 … 모스크바로 가는 건 여전히 꿈길

김담 작가의 ‘옛 동해북부선 철길을 걷다’ <13, 마지막 회> 동해북부선 또는 동해선

2025년 12월 16일(화) 09:29 [강원고성신문]

 

↑↑ ◇ 1936년 동아일보 기자 오기영이 ‘과학과 자본의 총아’라고 했던 기차, 이웃 마을인 거진읍 송정리와 송포리, 원당리는 강릉-제진 제9공구 공사가 진행 중이고, 산이 파헤쳐지고 논들이 사라지고 산 밑으로 굴을 뚫었고 또 뚫으며 새길을 닦고 있었다. 송정리 공사 현장 모습.

ⓒ 강원고성신문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미소 점령군의 군사분할선인 북위 38°선을 기점으로 두 개의 체제로 나뉘었고, 같은 해 9월 11일 남북을 오가던 경의선, 경원선 철도 운행도 끊겼다. 1925년 식민지 침탈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세운 ‘조선철도 12년 계획’ 가운데 하나였던 동해선은 원산에서 부산까지 종관철도로 계획되었고, 동해북부선(안변-포항), 사철이며 협궤였던 경동선을 매수하여 개칭한 동해중부선(포항-울산), 동해남부선(울산-부산진)으로 나누어서 공사하였으나 하나로 이어지지 못한 채 해방되었다. 동해북부선(안변-양양)은 삼팔선 이북에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와중에 폭격과 함포 사격 등으로 부서졌고, 전쟁 중에 부분 부분 고쳐서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휴전 뒤에는 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뉘었고, 1967년 동해북부선(안변-양양) 노선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 ◇ 옛 양양역 터 공사 현장 모습.

ⓒ 강원고성신문

1928년 2월 동해북부선을 착공하여 1929년 9월 11일 안변-흡곡(안변역, 오계역, 상음역, 자동역, 흡곡역) 사이 31.2km를 시작으로 1931년 7월 21일 흡곡-통천(흡곡역, 패천역, 송전역, 고저역, 통천역) 사이, 1932년 5월 21일 통천-두백(통천역, 벽양역, 염성역, 두백역) 사이, 8월 1일 두백-장전(두백역, 남애역, 장전역) 사이, 9월 16일 장전-외금강(장전역, 외금강역) 사이, 11월 1일 외금강-고성(외금강역, 고성역) 사이, 1933년 8월 1일 삼일포역 개업, 1935년 11월 1일 고성-간성(고성역, 초구역, 저진역, 현내역, 거진역, 간성역) 사이 그리고 1937년 12월 1일 간성-양양(간성역, 공현진역, 문암역, 천진리역, 속초역, 대포역, 낙산사역, 양양역) 사이를 개통하였고, 양양역 이남으로 동해북부선 공사는 진행하였으나 역 개통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양양 남대천 손양면 송현리에는 남대천 철교 다리받침이 남아 있다.

↑↑ ◇ 양양역 이남으로 동해북부선 공사는 진행하였으나 역 개통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양양 남대천 손양면 송현리에는 남대천 철교 다리받침이 남아 있다.

ⓒ 강원고성신문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에 처음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이 등장했다. 그 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업이 본격화되었고, 2000년 7월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하면서 막이 올랐으며 2002년 4월에는 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에 각각 합의하면서 당시 남북은 동해선의 경우 이북 고성군 고성읍 온정리에서 이남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까지 27km 구간을 우선 연결하기로 합의, 2002년 9월 18일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 착공식이 열렸다. 이에 따라 동해선 이남 구간은 2004년 4월 17일 군사분계선을 건너는 선로가 복원되었으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인 ‘제진역’까지는 2005년 12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제진에서 군사분계선(MDL)에 이르는 9km 구간이 완성됐다. 그리고 이북 구간은 군사분계선에서 고성읍 온정리까지 18.5km 구간의 궤도 부설이 완공되면서 남북은 2007년 5월 17일 동해선과 경의선 시범운행을 실시하였고, 동해선의 경우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청년역을 떠난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고성군 사천리 제진역에 당도하였다가 돌아갔으나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영업은 개시되지 못했다.

‘조선철도 12년 계획’ 가운데 하나였던 동해선

그 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선언에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이 포함되었고, 동해선과 경의선을 비롯한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동해선의 경우 강릉-제진 구간이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구간인 104.6km의 선로를 새로 부설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고, 2018년 12월 26일 개성시 판문역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개최되었다. 이때 서울역-개성 판문역 왕복 철도 요금은 1만 4천 원이었다. 2022년 1월 5일 고성군 제진역에서 강릉-제진 간 철도 착공식이 있었다. 강릉시 남강릉신호장부터 고성군 제진역 간 111.74km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 2조 7,406억 원이 책정되었고, 2027년 말 개통 예정이었으나 다시 2028년으로 연장되었다.

1876년 4월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로 갔던 김기수가 쓴 『일동기유(日東記遊)』에는 1872년 개통한 ‘요코하마에서 신바시까지’ 처음 화륜거(火輪車), 즉 기차를 탄 소감이 생생하다. 기차를 탔으되 탄 줄로 몰랐던 조선의 관리는 ‘말없이 머리를 긁으며 맥없이 놀랄 뿐’이었다. 세계와 세계,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고, 인간과 인간의 편의를 꾀하는 철도의 부설은 점령과 해방, 문명과 문명이 접하는 그 뒤에는 땅을 빼앗기고 집이 헐리고 묘지가 파헤쳐지고 논밭이 사라지고 산줄기가 끊기고 숲에 깃들었던 숨탄것들의 주검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텐넬’ 공사 중에 식비도 안 되는 품삯으로 일하던 인부들이 묻히고, 공사장 흙덩이가 무너지며 ‘다이나마이트’를 터치는 바람에 돌조각이 날아 행인이 부상하고, 한꺼번에 모집된 인부들이 갈 데 없어 아우성이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동해선 철도 공사를 촉진하는 진정이 빗발쳤다.

↑↑ ◇ 양양읍 연창리 일대 공사 현장 모습.

ⓒ 강원고성신문

동해선 부산-강릉 ITX(Intercity Train Express)는 2025년 1월 개통되었고, 서울-강릉 KTX(Korean Train Express)는 2017년 12월 개통되었다. 강릉-양양 구간은 한번도 기차가 운행된 적 없는 단절 구간이지만 2028년 강릉에서 고성군 제진까지 이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기차를 타고 한 번에 올 수 있을 테고, ‘동해안 일대가 조선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이 많음을 알게 되어서 장래 개통되는 날에는 조선 제일의 ‘관광 철도’를 등장시켜 (중략) 부산에서 원산에 이르기까지 약 칠백 킬로의 긴 거리 사이에 망망한 동해를 끼고 천하에 유명한 금강산과 해금강도 이 동해선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며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1939년 조선일보도 전했지만 금강산청년선으로 바뀐 휴전선 이북에 있는 동해북부선 안변-감호 구간을 이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껏 안개 속이다.

금강산청년역마저 베를린, 파리보다도 더 먼 데였다

대륙 침탈을 위한 군용철도로 부설된 경의선(서울-신의주) 철도가 다시 연결되어 중국 국경도시 단둥에서 ‘중국 횡단철도’를 타면 중국의 단동-북경-정주를 경유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드루즈바를 거쳐 모스크바로 이어지고, 다시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을 지나 파리로 갈 수도 있으며 ‘몽골 종단철도’를 타면 단둥에서 북경-울란바토르-울란우데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9,288km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갈 수도 있다. 중국과 몽골을 경유하지 않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처음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바로 연결되려면 경원선과 이어지는 동해북부선을 이용하면 모스크바로 바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노선 또한 여전히 꿈속의 꿈길이다.

↑↑ ◇ 원당리 공사 현장 모습.

ⓒ 강원고성신문

1936년 동아일보 기자 오기영이 ‘과학과 자본의 총아’라고 했던 기차, 이웃 마을인 거진읍 송정리와 송포리, 원당리는 강릉-제진 제9공구 공사가 진행 중이고, 산이 파헤쳐지고 논들이 사라지고 산 밑으로 굴을 뚫었고 또 뚫으며 새길을 닦고 있었다. 누구는 동해북부선 기차를 타고 통학하고 누구는 화진포로,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또 누구는 생선과 달걀, 말린 미역과 떡, 사과 등을 팔려고 또 누구는 혼인을 위해 오가느라고 또 누구는 재판을 받으려고 또 다른 누구는 일자리를 찾아서 오갔던 기억들을 들려주고 전해주었지만,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만주로 시베리아로 또 누군가는 강제 이주, 강제 징병으로 기차를 타고 떠났으나 돌아오지 못한/않은 이들이 품었던 꿈, 사랑, 바람과 함께 레일 밑에 쌓인 슬픔과 고통, 분노와 절망을 나는 영영 들을 수 없었다. 그랬으므로 강릉-제진 철도 공사 현장을 지나 읍내를 오갈 때마다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에 앞서 때때로 아마득했다.

↑↑ ◇ 어느 날은 고가(高架) 다릿발을 세우고 있는 옛 양양역 터 주변과 양양 남대천에서 북태평양으로 떠났다 모천회귀(母川回歸),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온 뒤 알을 낳고 물살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연어들을 들여다보며 삥삥매다가 또 어느 날은 강릉역 대합실에서 바장였다. 양양 남대천.

ⓒ 강원고성신문

↑↑ ◇ 강릉역.

ⓒ 강원고성신문

어느 날은 고가(高架) 다릿발을 세우고 있는 옛 양양역 터 주변과 양양 남대천에서 북태평양으로 떠났다 모천회귀(母川回歸),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온 뒤 알을 낳고 물살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연어들을 들여다보며 삥삥매다가 또 어느 날은 강릉역 대합실에서 바장였다. 부산으로도, 서울로도 갈 수 있었으나 강원도 고성은 기차로는 다다를 수 없었고, 아니 여차하면 비행기를 타고 몽골로, 북경으로, 모스크바로도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때 금강산을 구경하려고 버스를 타고 제진역 동해선출입신고소에 멈췄다가 비무장지대를 지나 휴전선을 넘나들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외금강역 또는 온정리역으로도 불리던 금강산청년역마저 베를린, 파리보다도 더 먼 데였다. <끝>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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