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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전쟁 사이를 살다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6년 02월 04일(수) 09:5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하루는 ‘야, 피난 가야지!’ 하더라구요. 무조건 군인들이 와서 죽인다고. 우리 고모가 처녀인데, 아군들이 나갔다 다시 들어오면서는 색시만 보면 모두 붙들어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래서 고모는 도장 쌀 단지에 숨어 지냈어요. 그 양반은 우리 아버지가 철도국에 다녀서 우리가 ‘빨간 패’라고 하더라구요. 우리 식구는 흰 패, 빨간 패를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철도국에서 조수 노릇을 했기 때문에 우리를 다 ‘빨갱이’로 취급하더라구요. 그래 아군들이 들어오자, 우리 작은 집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은 댕기지 못한다 하더라구요. 군인들이 함정을 파서 집어넣고 무조건 총살했어요, 아군들이 빨간 패를. 그래서 그리로 못 다녔어요. 구뎅이를 파고 밀어뜨리는 걸 내가 봤어요.

인용한 글은 지난해 고성학연구소가 펴낸 『고성 주민의 전쟁과 기억』(2025)의 일부다. 이 책은 당시 38선 이북에 자리한 고성군과 양양군(토성면, 죽왕면) 주민들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겪었는지, 그 고통과 상흔으로 얼룩진 육성을 담아 생생한 삶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아버지가 노동당원이어서 퇴각하는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피신하면서 가족과 헤어진 이야기, 두 형은 인민군으로 입대하고 동생은 미군 소속의 해병대 북파병으로 참전한 이야기, 양양고급중학교 재학생들이 전쟁 직전 김일성에게 서약서를 썼던 이야기, 1.4후퇴 당시 국군이 인민군 행세하고 마을에 나타나자 환영 인사를 했던 사람들이 학살당한 이야기, 피난 도중 사망한 동생의 시신을 여우가 물어간 이야기, 수복되어 돌아와 보니 기와집들 모두가 흙더미로 변한 마을 이야기, 간성역에 쌓여 있던 인민군 군수물자가 미군 폭격으로 사흘 밤낮 폭발하던 이야기, 빨갱이 딸이라고 국군이 겨눈 총부리 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이야기, 인민군과 국군을 번갈아 가며 밥해주던 이야기 등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전쟁의 기억이고 증언들이다.

인민군과 국군을 번갈아 가며

고성 주민이 겪은 한국전쟁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해방 전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8.15 해방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찾아온 역사적 전기다.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기쁨과 감격은 언어적 상상을 넘는 실재였다. 작가 이태준은 해방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역사적인 ‘팔월 십오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나 버리었고, 그 이튿날 아침에야 서울 친구의 ‘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로 비로소 제 육감이 없지는 않았다. 철원(읍내)에 와서야 꿈 아닌 ‘경성일보’를 보았고, 찾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 굳은 악수와 소리 나는 울음을 울었다. 하늘은 맑아 박꽃 같은 구름송이, 땅에는 무럭무럭 자라는 곡식들, 우거진 녹음들, 어느 것이고 우러러 절하고 소리 지르고 날뛰고 싶었다.

우리 지역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8월 18일에 양양군 주최로 범군민적 해방환영주민대회가 열렸다. 교실에 걸린 천황 사진이 내동댕이쳐졌고 신사가 부서졌다. 바다에서는 익사한 일본인의 시체가 밀려들었다. 현내면에서도 마을 농악대들이 모여 기쁨을 나눴다고 전한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립 국가의 미래가 불투명하여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어 나타났다. 특히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경계로 우리 국토를 갈라놓고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각각 점령하기로 약속했다. 소련군은 기민하게 먼저 움직였다. 8월 24일 양양군 38선에 도착하여 남북 왕래를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그래도 왕래와 교역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남북 주민의 왕래와 교역을 끝내 막을 수 없어 공식적인 남북교역(1947.5.22.~1949.3.31.)이 열리던 시절도 있었다. 소련군(‘로스깨/로스케’로 통했다)은 간성 시내에도 주둔하여 어린아이들은 소련군이 먹던 ‘흘레바리’(네모난 흑색빵)를 얻어먹곤 했다. 거진에 주둔한 소련군은 어깨에 장총을 메고 거진역과 자산천 다리를 지키고 있었고, 냇가에서 고니를 총으로 잡기도 했다고 한다.

소련군정이 실시되던 38 이북 지역에서는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북한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벌인 첫 개혁이 토지개혁이었다. 1946년 3월 5일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공포하여 급속히 집행하였다. 일본인과 친일파의 소유 토지, 그리고 5정보(약 1만5천평) 이상을 소유한 토지, 종교단체가 소유한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 분배하였다. 특히 모든 소작제도는 철저히 금지되었다. 이때 많은 지주가 토지를 잃고 월남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고성군에서도 마을마다 한두 집은 지주로 몰려 강제로 이주당했다. 당시 최대 지주였던 건봉사의 수많은 토지도 모두 몰수되었다. 당시 토지개혁을 주도한 인물들은 대개 일제강점기 적색농민조합운동이나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고성군에서도 황창갑, 박태선 같은 1920-3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토지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나고 대체로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북한 체제가 성립되면서 주민들 사이에 ‘흰패’니 ‘빨간패’니 하는 말도 생겨났다. 북쪽을 지지하면 빨간패, 남쪽을 지지하면 흰패가 되었다.

‘흰패’니 ‘빨간패’니 하는 말

한편 하나의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민족의 추상같은 염원을 저버리고 1948년 8월과 9월 남쪽에서는 대한민국이, 북쪽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때부터 남북은 갈등이 격화되면서 체제경쟁은 물론 전쟁 준비까지 획책했다. 드디어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전면적인 전쟁을 감행하였다. 국군과 인민군이 남진과 북진을 반복하는 가운데 지역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한 번은 북으로 또 한 번은 남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한 마을에서 일부 가족들이 월북하여 동기간이 갈리지고, 한 가족에서도 아버지는 월북하고 나머지 가족은 남겨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또한 국군과 인민군에게 각각 부역한 사람들은 밀고를 당하여 학살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가족과 마을, 그리고 민족공동체까지 파괴하고 해체시켰다. 특히 고성지역 주민들은 적국의 주민으로서 ‘수복지구’라는 특별 행정통제의 대상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소련군정을, 전쟁 시기에는 미군정을 동시에 경험해야 했으니 국민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 이후에는 많은 원주민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고향을 잃은 월남인들(대체로 북고성 및 함경도)이 채웠다. 일상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고, 상처가 상처를 덮고 있었다. 그렇게 38선과 휴전선 사이 섬이 된 이곳에는 한동안 강요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고성을 이해하거나 그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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