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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함께한 삶과 기억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자산으로 간직

고성명태傳 ① 명태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2026년 04월 16일(목) 11:12 [강원고성신문]

 

↑↑ 2025년 진행된 대진 풍어제 모습.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대진항에서 열렸다. 대진어촌계 주관으로 3년마다 열리는 마을 행사다(사진 : 고성문화원).

ⓒ 강원고성신문

“나 요왕 동자가 왔어요! 요왕 동자! 여기 엄마 아부지들 나 요왕 동자야. 바다에 죽은, 빠져 죽은 요왕 동자! 그래서 요왕(용왕) 동자가 뭐야? 고기 마이 잡구 나 고기 퍼다 주구. 우리 아부지야들 엄마야들 옛날에는 여기 못 살아서 마이 울었어(?). 할머이 할아부지가 배두 마이 고팠어. 오막살이 집을 짓구 마이 죽구. 목매달아 죽구 약 먹어 죽는 것두 옛날에는 많았어. 맞지 할무니? 힘이 들어가지구. 그래 갓고 ‘요놈의 동네 못 살 동네 요놈의 동네 못 살 동네!’ 할머이들이 그랬잖아? 옛날에 할무니. 그런데 그래두 인제 용왕제 지내구 서낭 할아부지 모셔놓고 오늘 백 년 됐어 백 년. 서낭 할아부지가. 6.25전쟁 나고 저거(서낭/성황당) 진 거예요. 6.25 전쟁 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많아. 맹태바리 이까(오징어)바리 가서두 마이 죽었어. 그래서 혼자 사는 할머이들이 너무 많았어. 울구 댕기미 만날 읃어먹는 할머이들이 있었어.”

#대진 풍어제에서 연행된 ‘용왕굿’

2025년 11월 24일, 대진 풍어제에서 연행된 ‘용왕굿’의 일부다. 과거 대진리의 어려웠던 시절, 바다에 빠져 죽은 용왕 동자의 신이 하는 말을 받아 원숙한 무당이 읊은 내용이다. 대진 풍어제는 3일간(11/22~24) 대진항에서 열렸다. 대진어촌계 주관으로 3년마다 열리는 마을 행사다. 이번 풍어제는 속초에서 활동하는 무당이 당주무(堂主巫, 금줄)가 되어 풍어제를 이끌었다. 18개 굿거리로 구성하여 3일 동안 이어진 굿에 참여한 무인(巫人)들은 여무(女巫) 5인과 남무(男巫, 양중, 화랑, 화랭이, 판수) 6인으로 구성되었다. 남무들 중에 굿거리에 참여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 무속인이 펼치는 굿의 백미는 사설과 춤, 음악이다. 풍어제에는 장구와 징, 꽹과리(쇠, 소금, 매구), 태평소(날라리, 쇄납), 바라의 악기를 다루는 악사들이 참여한다.

↑↑ -2025년 진행된 대진 풍어제 모습.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대진항에서 열렸다. 대진어촌계 주관으로 3년마다 열리는 마을 행사다(사진 : 고성문화원).

ⓒ 강원고성신문

대진 풍어제는 외형적인 형식에서 전통적인 풍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일부 굿의 형식이나 연행 내용에 있어서는 사뭇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 예전에 인기를 끌던 심청굿(숙련된 세습무가 주로 하던 굿) 같은 것은 연행되지 않았다. 또한 전통적으로 풍어제(동해안별신굿)에는 없었던 ‘작두굿’을 연행한 것이 특징적이었다. 풍어제를 이끈 당주무의 말을 들어보니, 어촌계 관계자들의 요구와 함께 볼거리에 대한 고민 끝에 도입한 형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진 풍어제의 작두굿은 일반적인 무당들의 작두타기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작두굿은 거대한 작두 무대가 설치되어 무술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작두날도 무려 40여 개나 되었고, 몇 단계의 작두타기 공연 과정이 연행되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무녀가 작두를 탄 채 그네를 타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작두굿만은 관객동원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한적하던 굿판과는 달리 100여 명이 모여들어 구경하였다.
최근 풍어제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대진 풍어제 내내 굿판을 지키며 굿을 즐긴 주민은 십여 명 남짓이었다. 한때 굿당은 할머니들의 공간이었다. 동해안에서 풍어제가 열리는 철이면 ‘굿투어’를 하는 할머니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전설의 시대는 흘러가고 형식만 남은 듯하다. 그 형식이 살아 있는 한 서사는 죽지 않을 것이다.

#고성지방의 무속제의 이야기

대진리에는 3개의 서낭(성황당)이 있었다. 할아버지 서낭과 두 할머니 서낭이었다. 20여 년 전에 큰 할머니 서낭을 할아버지 서낭으로 옮겨 한 방으로 합사하였다. 이러고 나니 작은 할머니(둘째 부인)가 질투한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대진 서낭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언제부턴가 황금(黃金, 대진의 옛지명) 앞바다에 잘 나던 고기가 잡히지 않고 농사도 흉년이 들고 전염병까지 돌면서 민심이 흉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의 꿈에 서낭신이 나타나 ‘나는 이곳을 지키는 서낭신이다. 마을에 3개의 성황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면 마을의 흉한 일들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후 마을에서는 꿈대로 서낭을 짓고 3년마다 풍어제를 지내자 흉한 일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동해안 갯마을에 서낭을 짓고 마을굿을 연행하기 시작한 시기를 정확히 특정할 수는 없으나, 고대사회의 종교의례(고구려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등)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485년 금강산을 구경한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은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서 고성지방의 무속제의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 -2025년 진행된 대진 풍어제 모습.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대진항에서 열렸다. 대진어촌계 주관으로 3년마다 열리는 마을 행사다(사진 : 고성문화원).

ⓒ 강원고성신문

영동민속에는 매년 3·4·5월중에 택일하여 무당을 맞이하고, 산해진미를 극진히 장만하여 산신에게 제를 지낸다. 부유한 자는 말에 싣고 가난한 자는 짊어지고 가서 제단에 제물을 진설한다. 생황을 불고 북을 치며 거문고를 뜯는 등 연 삼일동안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배부르도록 음식을 먹고 논 연후에 집으로 내려온다. 이때 비로소 매매가 시작된다. 제를 지내지 않으면 한 자의 베도 얻거나 주질 않는다. 고성지방의 민속제를 지내는 것이 이날이다. 길거리 곳곳에는 남녀가 단장을 하고 끊어지지 않게 길게 늘어서 있다. 이따금 빽빽하게 모여 있는 것이 마치 시장과 같다.(윤동환, 2010)

1631년 간성 현감으로 부임한 택당 이식이 남긴 <간성지>(1633)의 풍속의 소개를 보면, 병에 걸리면 의약을 쓰지 않고 오직 기도하고 푸닥거리를 할 뿐이다. 그래서 지역 안에 무당이 많았다. 이러한 무속의 전통은 역사가 깊어 민중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갯마을 믿을 건 서낭신 오직 하나뿐’(염근수)이라는 시구처럼 삶이 곤궁하고 위태로운 뱃사람들은 신에게 의탁하려는 경향이 누구보다 강했다.

이렇듯 어촌에 깊게 뿌리내린 무속의 전통은 한국전쟁 이후 더욱 번성하였다. 조사에 따르면 고성군 모든 어촌마을에서 1970년대까지 마을 서낭굿(동해안별신굿)이 성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절에 명태 어획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고성 주민의 삶을 지탱하는 생명선이었다. 현재 풍어제는 대진, 거진, 아야진, 문암2리 등 일부 마을에서만 3, 4년 주기로 열린다. 풍어제가 열리지 않는 어촌에서도 매년 정초에 서낭(성황) 제사를 지내고 있다. 특히 대진, 거진에는 3개, 문암1리, 아야진 등 일부 마을에는 남녀 2개의 서낭(성황당)이 보존되고 있다.

이러한 마을 서낭굿은 민속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때부터 민간신앙이었던 서낭굿(마을굿, 용왕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남)이 ‘동해안별신굿’(일반적으로 ‘풍어제’라 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굿과 무당이 천대받고 멸시당하던 시절과는 달리 굿을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하여 특정 무속인을 예능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로 우대하는 문화적 가치의 전도가 나타났다. 동해안의 풍어제는 주로 세습무(世襲巫, 가계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무속인)를 중심으로 강신무(降神巫, 신내림을 받고 탄생한 무속인)가 섞이는 제의 형태였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세습무는 동해안별신굿의 제1호 중요무형문화재(1985)였던 김석출(金石出, 1922-2005)의 일가였다. 그 역시 3대 세습무(악사)로 가계를 이었고, 부인은 물론 자식들도 무업을 계승하였다.

↑↑ 1990년 11월에 연행되었던 대진풍어제를 주관한 무녀 신석남의 모습(민속학자 황루시 교수의 사진).

ⓒ 강원고성신문


#대진 풍어제를 주관한 무녀 신석남

동해안 최북단 항구마을인 대진은 풍어제의 전통이 강한 어촌이었다. 1990년 11월에 연행되었던 대진풍어제의 모습을 살펴보자. 당시 풍어제를 주관한 무녀는 신석남(申石南, 申돌내미, 1930-1992)이었다. 신석남은 동생, 두 아들(김명익, 김명대), 두 며느리(빈순애-현 강릉단오제 예능보유자 등), 그리고 강신무 셋과 함께 대진 풍어제를 이끌었다. 신석남 무가(巫家)는 김석출 무가에 이어 동해안별신굿(풍어제)의 대표 세습무가로 알려졌다. 신석남은 1990년 5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강릉단오제의 무가 부문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녀는 단오굿 12거리를 모두 잘했으며, 특히 굿 사설이 가장 길고 원숙한 무녀만이 할 수 있는 심청굿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등을 구부리고 납신납신 추는 춤도 일품이었다고 한다. 이런 그녀가 무형문화재로 등극한 그해 대진 풍어제를 주관하였으니 자신의 축하 무대로 장식했을 것이다.

이렇듯 신석남의 굿판에 모여든 대진 주민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당시 설악신문(1990.11.26.)에 따르면, 굿판이 시작되자 동네 노인과 꼬마들이 먼저 모여들고, 날이 저물자 하루 일과를 끝낸 남자들과 아낙네들이 모여들었다. 저녁 무렵엔 세존굿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무녀의 춤과 양중(男巫)의 재담이 굿판의 흥을 돋구었다. 동네 사람들도 술이 몇 순배 돌고 음식을 나누면서 고조된 분위기에 맞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깨춤을 추고, 꼬마 아이들은 턱을 괴고 무녀의 춤사위에 넋을 잃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굿판을 얼씬거리면서 재미를 느끼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60년대)에 서낭굿(마을굿)을 몇 차례 구경한 적이 있다. 바닷가 해변에 차일(풍)을 치고 굿당을 만들고 제상이 차려진다. 제사상은 다채로운 종이꽃을 장식하고 소머리와 시루떡, 그리고 고기, 생선포, 과일 등으로 제물을 차린다. 제단 앞으로 선주들이 정성껏 차린 작은 제상 수십 개가 놓인다. 3일 밤낮에 걸쳐 15 ~ 20여 개의 굿거리가 펼쳐진다. 굿이 시작되면 동네 어른들은 물론 인근 지역 할머니들까지 원정을 와서 구경했다. 동네 아이들도 여기저기 끼어 앉아 구경했다. 몇 가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들추어보면, 굿 사설로 관중들을 웃기고 울리는 장면들이 있었고, 때로는 굿하는 무녀에게 옷깃이며 머리 끈에 아저씨들이 돈을 꿰어주는 모습도 있었다. 친구들과 더불어 밤이 이슥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제상에 놓인 제물(과일과 떡)을 훔쳐 먹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몰래 제상을 터는 일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금기가 있었다. 우리는 금기를 지키면서 가능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바로 마지막 날 밤에만 털 수 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서낭굿은 단순히 무당의 푸닥거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을 축제였다. 굿 소리는 온 동네를 뒤덮었다. 뱃사람들은 정성껏 굿을 지켰고, 구경꾼들은 무당의 공수(신탁의 내용을 전해주는 것)에 귀를 모아 긴장했다. 고향마을에서 2년마다 열렸던 이런 풍어제의 전통은 이제 닫혔다.

↑↑ 대진풍어제에서 방파제에 나가 신을 모시고 한바탕 놀이를 하는 장면(설악신문 1990년 11월 26일자).

ⓒ 강원고성신문

1990년 대진 풍어제가 열리던 당시만 하더라도 명태는 여전히 고성의 명물로 그 명성을 잃지 않았으며, 겨울철에는 대진과 거진을 비롯하여 해안가에는 일손이 달릴 정도로 덕장들이 빼곡히 명태를 걸었고, 곳곳에 명태가 겅성드뭇했다. 고성지역 갯마을의 풍어제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마을 축제였다. 명태의 주산지로 알려진 거진에는 3개의 서낭이 있다. 거진1리 성황당에서는 매년 음력 3월에 바다에서의 무사고와 만선을 기원하는 성황굿을 올리고, 3일간 지속되는 풍어제는 3년마다 별도로 연행되고 있다. 또한 거진항에서 열리는 고성명태축제(1999년 시작)에서는 풍어제가 축제의 중요 무대가 되기도 했다. 특히 제24회(2024) 고성명태축제에서는 ‘명태의 행운’을 소망하는 “굿럭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 2024년 제24회 고성명태축제는 ‘명태의 행운’을 소망하는 ‘굿럭 페스티벌’로 진행됐다.

ⓒ 강원고성신문


#명태를 다르게 상상하기

이제 명태는 새로운 기호다. 고성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생선이 아니다. 명태는 우리에게 비존재의 언어다. 한때 간성의 명태(杆太), 고성의 명태는 그 자체로 고유명사였다. 명태의 사라짐은 언어의 사라짐이다. 언어의 부재는 곧 상상력의 빈곤이다. 만약 고성명태축제의 형식과 공간마저 사라진다면 명태의 서사나 상상력이 그 토착적 기반을 상실할 것이다. 이번 <고성명태傳>을 열면서 ‘명태의 유령’을 이야기하는 것은 명태를 다르게 상상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고성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살아 있는 명태의 비늘을 만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명태와 함께한 삶과 기억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지역의 정체성으로 녹아들기를 바란다.

↑↑ 고성명태축제 명태 상징물(2025년).

ⓒ 강원고성신문

유령은 존재와 부재의 사이에 있다. 유령은 존재도 아니고 부재도 아닌 그림자 같은 존재다. 인간이 사물을 인지할 때도 유령이 작동한다는 논리에 비추어본다면 유령은 곧 상상력이다. 예술가들의 창작행위야말로 유령의 힘이 미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유령은 우리의 정신활동에 개입하는 존재다. 그래서 유령은 상상력의 매개이면서 이야기의 창조적 지평이라 할 수 있다. ‘명태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는 명제에는 그 유령의 힘으로 명태의 기원과 풍경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피어나고, 그와 더불어 우리의 삶이 좀 더 확장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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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고성신문

이번 호부터 ‘고성명태傳’이라는 제목으로 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이성식 연구원의 글을 연재한다. ‘명태의 고장’으로 유명한 고성지역의 명태 관련 풍속과 명태의 기원을 살펴보고, 해방 전후부터 6.25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현재까지의 명태 조업 관련 이야기 등을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심도 있게 다루며 명태를 통해 우리의 삶이 더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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