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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고성 안반덕 씨알농장 터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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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엄성준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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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8일(화) 14:22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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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왼편부터 문대골 목사(함석헌 선생 직계제자), 엄성준 함석헌 기념사업회 이사장(필자), 함명준 고성군수, 목성균 전 이사장, 목영주 기념사업회 전 이사(강릉), 김광섭 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 역사상 가장 무덥다는 2026년 여름을 보내면서 안반덕을 방문할 일이 생겼습니다. 강원도 고성군으로부터 함석헌의 안반덕 씨알농장에 관해 연락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회관에서 회원들 간에 방문 준비를 위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방문 기회에 안반덕 씨알농장을 기념할 만한 사업을 추진하면 좋겠다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9월 1일, 기념사업회 회원 12명으로 방문단이 꾸려져 강원도 고성으로 출발했습니다. 방문단 대부분이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경기도, 대전, 강릉에서 참여한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안반덕 씨알농장은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존재했으니 아득한 6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방문단 중에 문대골 목사님(1940년 생)은 1964년 안반덕 씨알농장에 들어갔다가 1년 후 결혼하시고 신혼생활을 1년 더 하셔서 이번에 동행하신 이은복 사모님과 더불어 유일하게 안반덕 생활 경험자이셨습니다. 1960년대 당시 안반덕에서 활동했던 분들의 연세가 이제 80대 중반에서 90대 초반이 되셨고 안타깝게도 별세하신 어르신들이 여럿입니다. 그분들은 함석헌 선생의 씨알정신으로 자연 속에서 풍요로운 농경생활과 같이살기 공동체의 실현을 꿈꾸던 2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안반덕 씨알농장을 향한 답사와 추억 여행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1989년 2월 함석헌 선생께서 별세하신 이후, 함 선생을 추모하던 이들이 여러 차례 안반덕으로 순례 여행을 다녀왔었습니다. 그중에서도 1993년 7월 안반덕 방문단은 16명 정도의 규모 있는 방문단이었는데, 방문 답사기는 방문단 일원이었으며 선혜학원을 처음 개척했던 이혜숙 님이 “씨알모임”지(1993년 9월호)에 기고하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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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3년 7월 30년만에 안반덕에서: (앞줄 왼편부터) 김종태‧이혜숙 부부, 권술용(고성 출신 씨알농장 동료), 문대골 목사. (뒷줄 왼편부터) 박세정(씨알농장 동료), 김말순(권술용 부인, 김복관 선생 여동생), 이은복(문대골 부인), 김복관(씨알농장 가족과 함께 운영), 곽분이(선혜학원 교사, 함석헌 평생 제자), 송용등(씨알농장 동료). | ⓒ 강원고성신문 | | 이혜숙 님은 1962년 고성군 간성면 탑동면 소정골에서 십리 더 들어간 안반골에서 “선혜학원”을 만들어 학교가 없는 그곳 산골 마을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던 분입니다. 선혜학원은 1950년대 말부터 농촌 어린이 교육운동을 시작한 횃불회의 지원을 받아 이화여대 대학생들이 주도하여 만든 미인가 학교였습니다. 안반덕 씨알농장은 선혜학원에서도 20리 더 산속 깊이 들어선 곳에 있어서, 선혜학원은 안반덕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안반덕과 선혜학원의 협력과 우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연 속 농장 개척정신과 교육 열정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 속에 안반덕 씨알농장을 개척한 청년 김종태와 선혜학원을 개척한 이혜숙의 사랑이 싹텄고 결혼에 이르게 되었으며, 씨알농장의 정신적인 지주인 함석헌 선생과 선혜학원 교사 곽분이 님의 평생에 걸친 사제 관계도 이루어졌습니다.
2011년 6월 안반덕 방문은 5명으로 구성되었고 강원도 진부령 고개를 넘어 안반덕으로 향했었습니다. 이 여정은 김해암 교수(미 콜롬비아대)가 “씨알의소리”(2012년 1-2월호)에 기고하였는데 세계여행을 많이 다닌 학자답게 진부령의 자연경관을 유럽 스위스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고 찬탄했습니다. 방문단으로 참여한 곽분이 님(선혜학원 교사 출신)이 선혜학원 제자였던 김인수 님과 반가운 해후를 하여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안반덕과 산골학교 선혜학원의 추억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이번 2026년 9월 방문단을 태운 소형 버스는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 속초에서 3명의 방문단원을 태우고 고성에 도착해서 함명준 고성군수 님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방문단이 안반덕 씨알농장의 개척 정신을 담은 “함석헌과 함께한 씨알공동체 이야기”(문대골 편저)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전달하고 기념사업의 필요성과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고성군이 분단된 남북한의 상징이므로, 함석헌 선생의 평화통일 열정과 선혜학원의 교육 열정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기념 방안에 대해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함명준 고성군수와 함께 4륜 다목적 차량에 분승해서 선혜학원 터를 지나 안반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선혜학원 터를 지나면 국유림으로 들어가기 위한 임도가 있는데 특별히 통과 허가를 받고 비포장도로를 40여 분 올라가서 안반덕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도 이곳에 처음 와 본다는 함 군수과 함께 방문단은 이곳 지형을 잘 아는 이장과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안반덕을 조망해 보았습니다. 직접 안반덕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고 수풀이 무성하기 때문입니다. 씨알농장 대원들의 오두막집, 소 축사, 함석헌 선생의 숙소 자리가 어디였는지 멀리서 짚어 보고, 그곳에서 동해 바다가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본 안반덕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전날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반덕 지형을 아시는 분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가 오두막집 있던 곳”이고, “저곳이 소 축사가 있었고 소의 사료를 등에 짊어지고 이 방향으로 올라왔다”고 설명하셨지만 직접 생활해 보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정확하게 위치가 집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소나무, 전나무 숲이 우거지고 계곡으로 기울어지는 산등성이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안반덕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관대바위가 보였습니다. ”아, 저 관대바위가 ‘큰 바위 얼굴’처럼 멀리서도 듬직하게 보이는구나!”, “주성호 전도사님이 피땀 흘리며 선혜학원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려고 했던 농장이 저 관대바위 아래에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1967년 선혜학원은 간성초등학교 분교가 되었고 선혜학원에서 봉사하던 여교사들, 전도사는 모두 떠났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가난을 이겨내자는 선혜학원 정신은 선혜학원에서 배웠던 어린이들에게 남았고, 이분들은 성장해서 지역사회를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안반덕의 험준한 산등성이 농장은 사라졌지만 모두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씨알정신과 모두 배워서 생각하는 씨알을 키우자는 선혜학원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안반덕 방문단은 함석헌 선생의 평화정신, 같이살기 정신을 실현하려고 했던 피와 땀을 잊지 말고 오늘 젊은 세대에게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평안북도 용천 태생으로 김일성의 공산체제에 의해 토지를 몰수 당하고 회유와 협박을 피하여 1947년 월남하신 분입니다. 남북 분단에 가슴 아파하시고 1960년대부터 남북한 화합과 평화통일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남북 통일은 우리 씨알이 주도해야 하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미 종전체제와 평화협정을 제안하시는 선견지명을 가지셨습니다. 이제 남북 분단의 최전선인 고성군에 안반덕 정신과 선혜학원 정신을 이을 수 있는 기념과 교육시설이 설립되기를 희망합니다. 안반덕은 접근이 어려우므로, 선혜학원 터에 평화통일 순례길이나 평화통일 교육관이 설립되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방문객들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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