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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안반덕 씨알농장 터 방문기’를 읽고

금강칼럼 / 이성식 칼럼위원(고성문화원 고성학연구소 연구원)

2026년 10월 07일(수) 09:5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지난 9월 7일자 <강원고성신문>에는 함석헌 관련한 글 한편이 실렸다.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올린 글이다.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글의 요지는 고성의 안반덕 씨알농장 터와 선유리(소천동, ‘소정골’, 탑동2리) 선혜학원 터를 중심으로 평화통일 순례길 조성과 평화통일 교육관의 건립을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여기 고성지역에서 함석헌을 말한다는 것은 다소 생소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37년에 이른다. 더욱이 젊은 세대들은 그를 낯선 존재로 여길 수 있다.

함석헌(1901~1989)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하였다. 인권운동가, 독립운동가, 종교인, 시인이며, 언론인, 역사가, 교육자이다.

이 글은 <함석헌기념관>에서 그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필자는 대학 시절 그의 사상적 운동을 지지하고 그의 글을 읽으려고 애썼다.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대학 동아리 일행과 함께 명동 YWCA를 찾아간 기억이 새롭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함석헌을 이렇게 지면으로 소환하게 된 것은 지난 9월 1일 함석헌기념사업회 일행과 함명준 고성군수가 ‘안반덕 씨알농장 터’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함석헌의 안반덕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 그의 사상적 운동을 지지

그럼 함석헌은 고성지역과 어떤 인연을 맺고 있을까. 함석헌이 고성을 찾아온 것은 그의 제자들 때문이었다. 함석헌은 1950년대 말 천안에서 ‘씨알농장’을 개척하였다. 그곳에서 함석헌과 함께 농장을 일구던 제자 김종태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천안을 떠난 이후 새로운 정착지를 찾다가 간성읍 소재 ‘안반덕’(‘안반데기’, 선유리와 안흘리 중간 지점)으로 들어온 것이다. 때는 1961년경이다. 양양 출신 김종태와 대진의 권술룡을 중심으로 몇몇 제자들이 안흘리를 거쳐 안반덕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구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안반덕 씨알농장’이다. 그들이 안반덕을 찾아서 농장을 개척한 것은 함석헌과 사전에 의논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김종태는 말한다. 안반덕의 농장은 여러 제자들이 7년 정도 유지한 끝에 1968년 폐쇄되었다.

함석헌이 ‘안반덕 씨알농장’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62년이다. 함석헌의 안반덕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이후 밭에서 일하거나 혼자 산책을 다녔다. 집안에서 책을 보거나 경전을 낭독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함석헌은 1년에 몇 차례 다녀갔으며, 짧게는 며칠, 길게는 달포씩 지냈다고 한다. 함석헌은 5·16 군사 쿠데타와 65년 한일 협정 반대 투쟁을 하면서 잠시 농장을 은신처로 삼았다고 한다. 수년에 걸쳐 다녀감에도 함석헌은 지역주민과의 접촉은 없었다.

한편, 안반덕은 선유리(탑동2리, 소천동, 소정골로 불림)를 거쳐야 오를 수 있었다. 당시 그곳에는 작은 학교가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 횃불회라는 기독교 봉사모임이 후원한 선혜학원이 다. 이화여대 출신의 이혜숙이라는 교사가 1962년에 개원하였다. 초가집을 얻어 <먹방교실>을 열었다. 당시 이 학원은 언론의 화제로 등장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1970년 간성국민학교 선혜분교로 승격되어 운영하다가 1990년 폐교되었다. 함석헌은 안반덕 ‘씨알농장’을 찾을 때면 종종 선혜학원을 들려갔다. 당시 함석헌은 특별히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선혜학원과 씨알농장의 연결 지점은 두 장소의 주체인 김종태와 이혜숙이라는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인 함석헌을 이해하는 것

한편 함석헌 제자들이 안반덕 씨알농장 터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차례 방문하였으나 옛길과 옛터를 찾기란 쉽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김종태 부부 등 농장팀 일행의 1993년 방문도 실패하고 돌아갔다. 이번 연합 방문(기념사업회와 고성군)에서도 씨알농장의 터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 함석헌기념사업회가 추구하려는 두 가지 사업, 즉 <평화통일 순례길 조성>과 <평화통일 교육관의 건립>은 과연 타당성이 있는 주장인가를 살펴보자. 우선 <순례길 조성>은 선혜학원과 안반덕 씨알농장에 이르는 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옛길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원시림을 뚫고 60년 전의 길을 복원할 수는 없다. 본래 순례(巡禮)란 관광이 아니라 영적 갱신과 자기 성찰, 그리고 문화적 체험 등을 동시에 기대하는 여정이기 때문에 함석헌의 자취와 문화적 흔적을 더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안반덕 씨알농장은 함석헌의 자취와 문화적 흔적을 더듬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특히 ‘씨알순례길’(현재 ‘씨알순례단’이란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이란 이름이 갖는 종교성(기독교)의 문제를 어떻게 탈종교화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교육관 건립의 문제에 있어서도 함석헌의 평화통일 사상과 선혜학원의 교육적 가치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젊은이들에게 함석헌의 사상과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여기 고성에서의 순례길과 교육관의 건립이어야 하는지도 깊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현재 젊은이들에게 함석헌은 여성 편력의 문제로 비판의 대상이라는 점도 환기되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인 함석헌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석헌의 사상과 철학에 매몰되어 그의 삶과 역사성을 놓친다면 이것은 또 다른 우상을 세우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석헌의 씨알정신을 지나치게 관념화하여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반덕 씨알농장’과 관련된 인물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다. 따라서 씨알농장이 그들에게는 의미 있고 역사적인 장소이지만 고성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떤 장소성으로 이해되는지 공론화가 필요하다. 화진포가 기독교의 성지로 둔갑한 사례를 보면,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이 선교사 셔우드 홀의 개인별장임에도 ‘예배당’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선교의 성지처럼 인식되었고, 최근에는 화진포에 <셔우드 홀 문화공간>까지 건립되었다. ‘순례길’ 하나가 또 다른 성지로 둔갑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은 <문대골 엮음, 『함석헌과 함께한 씨알공동체 이야기』, 함석헌기념사업회, 2026>을 참고하였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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