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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는 역사적·실재적으로 고성군에 속해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78> 울산바위의 역사적 고찰 ⑧-마지막회

2015년 03월 11일(수) 13:47 141호 [강원고성신문]

 

↑↑ 김광섭 (칼럼위원, 향토사학자)

ⓒ 강원고성신문

2. 한시(漢詩)

울산바위를 노래하고 있는 12편 한시는 외직으로 나온 강원도와 관련한 지방관이나 금강산 유람 길에 문인들이 남긴 것인데, 한결같이 천후산’ 지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강원도 관찰사 3명, 강원도 도사 1명, 강릉부사 1명, 문인 4명이다.

1) 천후산을 지나면서(過天吼山)=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은 1529년 3월에 江原道 都事로 외직에 부임되었다가 공무 중에 남긴 시이다.

一望襄州天吼峯 / 양주에 자리 잡은 천후봉을 바라보니
驚看萬疊鐵芙蓉 / 천만송이 철부용이 핀듯하여 놀랍네.
穿雲欲訪金剛窟 / 구름 속에 높이 솟은 금강굴을 찾아가면
應有仙人玉雪容 / 옥설처럼 어여쁜 신선이 반기리라.
『무릉잡고권2(武陵雜稿卷之二)』「별집(別集)」

2) 또 천후산을 유람하고서(再遊天吼山)= 문려(文勵, 1553-1605)는 1575년 2월 양양부사에 제수된 부친(玉洞 文益成)4)을 따라 왔다가 주로 무대가 양양지역의 雪嶽山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남긴 시 중에 하나이다.

何處紫簫聲 / 어디에서 울리는 퉁소 소린가
隨風落遠洞 / 바람타고 동굴까지 들리어오네.
聊知學仙人 / 신선놀음 조금은 아는 터이라
向月三腔弄 / 달을 보며 몇 곡조 넘기어보네.

3) 천후산으로 들어가며(入天吼山)= 허적(許, 1563~1640)은 1623년 金剛山을 유람 길에 간성을 거쳐 襄陽까지 많은 詩作을 남겼다. 특히 저자는 간성지역에 남긴 詩만 현재 7수가 전해지고 있다.

崎嶇逕路騎재通/ 산길이 하도 험해 걷기조차 어려운데
赤葉玲瓏碧篠叢 / 붉은 잎 영롱하고 푸른 가지 숲 이뤘네.
削立峯巒雲霧外 / 깎아지른 봉우리들 구름밖에 솟아있고
環流溪澗石岩中 / 골짜기 바위 새로는 시내물이 흘러가네.
欲尋奇絶知難盡 / 기묘한 절경들을 어이다 찾을까만
更討幽深定不窮 / 그윽한 산골짜기 끝 어딘지 모르겠네.
向晩遙投蕭寺憩 / 어제 밤 쉬며 묵던 숙사를 돌아보니
滿天寒雨漸옹옹 / 자우룩한 찬비 내려 그 모습을 못 찾겠네.
『수색집권5(水色集卷之五)』

4) 천후산(天吼山) = 조위한(趙緯韓, 1567~1649)은 1623년 襄陽 府使로 임소에 나갔을 때의 양양 지역의 관람하고 현산록(峴山錄)을 남겼다.

橫空蒼壁列長屛 / 하늘높이 솟은 절벽 푸른 병풍 둘러친 듯
內外재分尺一經 / 좁다란 오솔길이 그 속에 끼어있네.
草木也無留影迹 / 초목조차 자취를 남기지 않았으니
禽蟲那得着毛翎 / 날이 새도 오지 않아 깃털하나 볼 수 없네.
獰姿희비撑高掌 / 험한 바위 하늘을 받들듯이 치솟아서
壯勢森嚴怒巨靈 / 웅장하고 엄한 모습 노하신 신령 같네.
산雨興風神怪驗 / 비바람을 불러오는 신선이 계시는 듯
有時雷吼震巖상 / 때로는 우레 소리 바위 문을 두드리네.
『현곡집권7(玄谷集卷之七)』

5) 천후산을 유람하다 잠시 토성, 폭포, 식당동을 둘러보고 또 잠시 권금성과 선정암을 구경하고서(遊天吼山權土城飛瀑食堂洞權金城禪定庵) = 이민구(李敏求, 1589~1670)는 외직으로 나가기 전에 1631년 휴가를 얻어 許惟善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작품과 1635년 이듬해까지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의 작품이다

祗林暮景수수 / 해질 머리 수풀경치 서늘해서 시원한데
我與使君登嶽遙 / 사군과 더불어 먼 산위로 올랐다네.
玉削堂皇排雁齒 / 깎아 세운 옥돌인양 늘어선 바위사이
銀傾河漢掛虹腰 / 쏟아지는 은하수에 무지개 걸려있네.
仙梯鐵鎖明還滅 / 선경의 사다리엔 쇠사슬이 반짝대고
覺路曇華定又飄 / 각성길 홍초 꽃은 머물려다 또 날리네.
洞裏欲棲珠樹鶴 / 동굴 속 구슬나무 선학이 깃들이니
人間空播白雲謠 / 인간세상 노래 가락 뜬구름 분명 할세.
『동주집권7(東州集卷之七)』

↑↑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오숙이 천후산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한시.

ⓒ 강원고성신문


6) 천후산(天吼山)= 오숙(1592~1634)은 1627년 10월 외직으로 江原道 觀察使로 내려가 그곳에서 지은 시와 이듬해 歸鄕하여 지낼 때의 詩作이 실려 있다.

身자地孰因緣 /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무슨 인연인가?
衆妙之門玄又玄 / 상상 밖 미묘한 곳 수없이 많고 많네.
巖作室廬棲老釋 / 바위 동굴 집을 삼아 늙은 스님 살아가고
帝子窟 石鋪床점宴群仙 / 제왕동굴 돌 평상엔 신선들이 잔치하네.
食堂巖 旁排鐵戟森霜雪 / 식당암 옆 칼바위들 서슬 푸른 창대 같고
雪嶽峯 屈注銀潢瀉海天 / 설악봉서 내리는 물 은하수 퍼붓는 듯
土王瀑 共說巨靈時怒吼 / 토왕 폭포 노한 신선 꾸짖듯이 울부짖고
雨師風伯競趨前 / 우사풍백 양보 없이 앞장을 다툴 때면
此山鳴則輒風雨 / 이산은 울고 나서 비가오고 바람부네.
『천파집제2(天坡集第二)』

7) 천후산(天吼山)=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은 1651년 金剛山을 유람하며 돌아오는 길에 관동지역의 해상을 따라 유람하며 읊은 시이다.

空穴雷聲吼 / 텅텅 빈 구멍에선 우뢰가 울부짖고
高標日馭回 / 높이 솟아 해를 몰고 돌아가니
炎天佛骨冷 / 오뉴월 염천인데 부처님도 추워 떨고
風自廣寒來 / 머나먼 광한궁서 찬바람 불어오네.
『백헌선생집권12(白軒集卷之十二)』

8) 천후산(天吼山)= 이동표(李東標, 1644∼1700)는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하여 죄를 입은 박태보(朴泰輔), 오두인(吳斗寅) 등을 신구하다가 1690년 양양현감으로 좌천되어 설악산과 금강산을 유람 길에 남긴 시이다.

我願天吼山 / 원하노니 우리의 천후산이여!
爲惜萬民命 / 그대의 만백성을 아껴주소서.
急疾험風威 / 사나운 바람을 걷어주시고
勿令嘉穀病 / 오곡을 탈 없이 키워주소서.
高攀雪嶽頂 / 설악산 높은 봉을 끄잡아 오름도
不是輕性命 / 목숨 걸고 장난하는 것이 아니라
中有不死藥 / 그곳에 불사약이 있다하기에
可以療我病 / 내 병을 고쳐보기 위함이외다.
『나은집권2(懶隱集卷之二)』

9) 천후산의 바람소리를 듣고(天吼聞風)= 이해조(李海朝, 1660~1711)는 1709년 襄陽 府使 재임 중에「현산 삼십경을 읊었다.(峴山三十詠)」이 시는 김창흡(金昌翕)의 화답한 작품이다.

천후산은 고을에서 북쪽으로 65리 떨어진 곳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석봉들이 기이한 장관을 이루고 있어 속세에서는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르는데 설악산의 한 지맥이다. 산허리에 풍혈 두 개가 있는데 대풍이 일어날 때면 산이 미리 스스로 운다. 그래서 천후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天吼山。在府北六十五里。石峯초削奇壯。俗稱小金剛。卽雪岳一支。山腰。有兩風穴。大風將起。山自先鳴。故名。

嵯峨小金剛 / 높고도 험준한 작은 금강산
吼怒雙竅風 / 두 풍혈이 노해서 울부짖으면
震蕩魚龍窟 / 어룡들의 소굴이 뒤흔들리고
창瑟松桂叢 / 솔숲도 무서운 파도일구네.
莫助扶搖勢 / 거세찬 저 바람이 돕지 않아도
天池本在東 / 천지의 근본 찾아 동으로 오네.
惟有禦寇仙 / 그래도 도적 막는 신선계시니
借爾欲乘空 / 그 힘 빌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네.
『명암집권4(鳴巖集卷之四)』

10) 천후산의 바람소리를 듣고(天吼聞風)=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않고 유독 강원도 지역의 鐵原 三釜淵, 白雲山, 雪嶽山 등 곳곳에 卜居하면서 많은 詩文을 남겼다. 이 시는「현산 삼십경을 읊다.(峴山三十詠)」중에 하나이다.

夫何有不平 / 무슨 불평 그다지 크고 많아서
굉哮殷晴空 / 맑은 하늘 시끄럽게 울부짖는가?
窈窕知所自 / 심원한 그 근원을 알고 있기에
숙見洪濤風 / 갑자기 험한 파도 일으키누나!
箕月豈待占 / 기월까지 어찌 기다리고 있을까?
山澤本相通 / 강산의 근원은 상통하거늘
於焉了物我 / 어언간 피차를 알겠으니
回혈理何窮 / 외곡된 도리 언제 없어지리오.
『삼연집권9(三淵集卷之九)』

↑↑ 강릉부사를 지낸 조하망이 설악산과 금강산을 유람하며 남긴 한시.

ⓒ 강원고성신문


11) 천후산 석굴(天吼山石窟)= 조하망(曺夏望, 1682~1747)13)은 1742년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관동지역의 雪嶽山, 金剛山 유람하며 남긴 시이다.

危峰直欲與天鳴 / 소소리 치솟은 봉 천둥치듯 울어대고
巨石穹륭庇化城 / 거대한 바위동굴 성시를 이루었네.
吾恐人天剖判日 / 천지개벽 또다시 일어날까 두렵구나.
二儀於此不分明 / 그때면 이의를 가리기지도 못하리라
『서주집권3(西州集卷之三)』

12) 천후산(天吼山)= 이명환(李明煥, 1718∼1764)14)는 1746년 강원도와 金剛山, 雪嶽山 일대와 동해안을 따라 유람할 때 적은 시이다.

雪山之北金剛東 / 설악산 북쪽이요 금강산 동쪽여기
송處군巒碧玉叢 / 높디높은 산봉들은 벽옥 묶어 세워 논 듯
莫是吾家萬丈岫 / 만장되는 이 동굴 내 집인가 여겨지고
隨風飛落海雲中 / 바람타고 바다위의 구름 속에 온 것 같네.
『해악집권1(海嶽集卷之一)』

Ⅵ. 맺음말

이상 살펴본 것처럼 울산바위는 조선시대 지리지·고지도·기행문·기문·한시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보고 듣는 각도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울산바위는 고성군과 속초시에 걸쳐있는 가운데, 과거에도 마찬가지 두 지역이 경계를 이루는 관계로 울산바위 지명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야기되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조선시대 울산바위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몇가지 결론을 이끌어냈다.
첫째 울산바위는 많은 지리지에 ‘간성 남쪽 70리에 있다’고 기록한 내용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간성군 또는 고성군에 속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찬지리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45권,「간성군」산천조에는, “천후산(天吼山)은 고을 남쪽 70리에 있다”고 적고 있으며, 사찬지리지 1633년 택당 이식(李植)의 『수성지(水城志)』에도 “천후산(天吼山)은 고을 남쪽 70리에 있으며, 세간에 전하기를 양양과 간성 사이에는 큰 바람이 많은데 이 때문”이라고 하여 양간지풍의 근원이 바로 천후산, 즉 울산바위였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1650년 기록한 유형원(柳馨遠)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7권,「杆城郡」山川條에도 “천후산(天吼山)은 군의 남쪽 70리에 있다. … 하늘에서 비나 눈이 오려하면 산이 스스로 울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일부 지리지는 ‘천후산(天吼山)’과 ‘울산(蔚山)’을 각각 별개의 지명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861년(철종 12)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살펴보면, 양양과 간성을 경계로 점선이 그려져 있고, 설악산 북쪽으로 동서로 산맥이 뻗어 이어져 있는데 ‘천후산(天吼山)’과 ‘울산(蔚山)’이 각각 별개 지명으로 적혀 있다.
셋째 ‘천후산(天吼山)’이란 의미는 산이 크게 울면 큰 바람이 불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울산(蔚山)’은 ‘울타리를 설치한 모양의 산’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특히 1884년 간성군수 고영희가 기록한 『간성읍지』에서 ‘울산암(蔚山巖)’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고 있는데, 이때를 시작으로 울산바위라는 지명이 널리 펴지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천후산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울산바위라는 지명으로 정착되었다.
설악산의 10대 절경으로 꼽히는 울산바위는 현재 고성군보다는 오히려 속초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1-2번지에 위치해 있어서 ‘고성8景’에 속해 있지만, 고성 주민들이 울산바위를 탐방하기 위해서는 속초시를 경유해 설악동 소공원으로 진입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설악산으로 진입하는 공식 탐방로는 속초시 외설악의 본소를 비롯해 양양군 남설악의 오색분소, 인제군 내설악의 장수대분소와 백담분소가 있다. 설악권에 속해 있는 4개 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고성군에서만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
2013년 4월 강원고성신문 사설은 ‘고성군에서 설악산 진입가능하게 해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현재 관리공단은 고성군에서의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산악인들이 고성군 미시령에서 지하통로를 통해 ‘폭포민박’에 도착한 뒤 ‘말굽폭포’를 거쳐 울산바위까지 가고 있어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앞으로 고성군에서도 울산바위로 향하는 등산로가 하루빨리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
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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